감사원이 20일 공개한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보고서에는 당초 2020년까지 가동 예정이었던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일부러 낮게 평가해 조기 폐쇄를 결정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당초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년간 원전을 더 가동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지만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청와대 보고를 위해 ‘즉시 가동중단’을 밀어붙였고 2018년 5월 3일 3427억 원이었던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결과는 6월 최종 224억 원까지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 감사원 “문 대통령 월성 1호기 가동중단 문의 후 백운규 중단 검토 지시”
감사원은 “2018년 4월 4일 백 전 장관은 외부 기관의 경제성 평가 결과 등이 나오기 전에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과 동시에 월성 1호기를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월성 1호기에 대한 경제성 평가 용역은 2018년 4월 10일에 시작됐고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의결은 같은 해 6월 15일에 이뤄졌다.
특히 산업부 관계자는 백 전 장관이 청와대 보고를 위해 원전 즉시 가동 중단을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2018년 4월 초 문재인 대통령은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청와대 A 보좌관에게 물었다. 이를 전해들은 백 전 장관은 “한수원 이사회가 경제성, 지역수용성 등을 고려해 폐쇄를 결정한다고 하면 다시 가동하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며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 폐쇄 결정과 함께 즉시 가동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4월 4일 한수원 직원들을 산업부로 불러 ‘장관이 즉시 가동 중단으로 결정했고 이를 대통령비서실에도 보고할 것’이라고 했다. 저도 장관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고 한수원도 이를 거부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감사원에 진술했다. 문 대통령의 질문이 있은 다음 날 백 전 장관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린 것이다.
○ 월성 1호기 판매단가 3427억 원에서 224억 원으로 낮춰져
이후 산업부와 한수원, 경제성 평가를 맡은 회계법인은 2018년 5월 11∼18일 세 차례 3자 회의를 갖고 경제성 평가 결과 낮추기에 나섰다. 일단 2018년 5월 3일 3427억 원이었던 경제성 평가 결과를 5월 10일 1779억 원으로 낮춘 이들은 세 차례 회의를 통해 월성 1호기 이용률을 70%에서 60%로, 판매단가를 전년도 판매단가보다 훨씬 낮은 한수원의 전망가격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결과는 1779억 원에서 733억 원으로 떨어졌다가, 같은 달 18일에는 163억 원까지 낮아졌다가 224억 원으로 최종 결정됐다. 이 과정에서 회계법인 담당자는 한수원 관계자에게 메일을 보내 “어느 순간부터 한수원과 정부가 원하는 결과를 맞추기 위한 작업이 돼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고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번 감사 결과로 인한 처분 대상자는 4명이다. 백 전 장관은 2018년 9월 퇴임했다는 이유로 “(이번 결과를) 향후 재취업과 포상 등에 인사자료로 활용하라”는 통보만 내려졌다. 정재훈 한수원 사장에게는 “경제성 평가의 신뢰성을 저해하고 이사회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지장을 초래하는 일이 없게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는 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감사 대상자들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가 정당한 결정이라며 감사 결과에 반발했다. 백 전 장관은 “감사원이 회계적 시각으로만 접근해 경제성 분석에 대한 평가를 내린 점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당시 대통령산업정책비서관이었던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재직 당시 청와대에서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을 보고해 달라고 산업부에 요청했다”며 “이후로는 경제성 평가나 이사회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성 측면에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가동중단은 당연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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