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감사보고서 공개]
“산업부, 조기폐쇄 유도” 결론 내고서 가동중단 적정성은 감사대상 제외
일각 “감사원, 정치적 타협” 목소리… 업계 “이럴거면 감사 왜 했나” 비판
감사원이 20일 정작 감사의 핵심인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적정성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감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선 감사원이 산업통상자원부가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에 개입해 절차적 흠결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도, 핵심 쟁점이자 감사 청구 취지인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에 대해선 별다른 판단을 내놓지 않은 것을 두고 이번 감사를 반대해온 청와대와 여당을 의식해 “정치적 타협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원전 업계는 “사실상 탈원전 정책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감사원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보고서에서 “이번 감사는 경제성 분야 위주로 이뤄졌다”며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경제성 외에 안전성이나 지역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으로 이번 감사 결과를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감사원은 또 “정부의 ‘에너지 전환정책’이나 그 일환으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추진하기로 한 정책 결정의 당부(當否·옳고 그름)는 이번 감사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감사원은 조기 폐쇄 결정의 적정성에 대해선 “산업부는 한수원이 즉시 가동 중단 결정을 하는 데 유리한 내용으로 경제성 평가가 나오도록 평가 과정에 관여했다”고 지적했다. 산업부가 월성 1호기 즉각 가동 중단이라는 미리 짜인 결론에 맞춰 조기 폐쇄를 유도했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자체는 감사 판단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힌 셈이다.
감사원은 또 조기 폐쇄를 결정한 한수원 이사회의 배임 여부에 대해서도 “업무상 배임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한수원 이사들이 월성 1호기 폐쇄로 한수원에 재산상 손해를 끼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감사원은 조사 결과에서 한수원이 2018년 6월 15일 이사회에 앞서 이사들에게 월성 1호기를 계속 가동할 경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을 사전에 설명했다고 지적했다. 월성 1호기의 경제성을 낮게 평가하고 이를 미리 이사회에 알려 원전 조기 폐쇄 결정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경제성 저평가와 조기 폐쇄 결정을 주도한 산업부 및 한수원 관계자에 대해서도 검찰 고발 등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감사 결과를 두고 원전업계 안팎에서는 “이럴 거면 감사를 왜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각에선 감사 과정에서 여권이 최재형 감사원장의 중립성을 문제 삼으면서 감사원이 정치적 절충점을 찾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는 이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무효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던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은 즉시 철회돼야 한다”며 “건설이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또한 정상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덕환 에교협 공동대표(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국회가 감사원에 요구한 사안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타당성인데 이 부분에 대한 결론은 쏙 빠져 있다”며 “1년 동안 감사를 한 결과임에도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성풍현 원자력살리기국민행동 비상임대표(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감사 내용이 매우 미진하다”며 “문제의 발단은 청와대인데 징계는 ‘꼬리 자르기’ 수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미진한 감사 결과로는 탈원전 정책의 방향을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