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을) 경비실에도 두고요. 놀이터에도 놓고요. 차가 많이 다니는 곳은 빼도록 해요.”
20일 오후 서울 구로구 항동에 있는 한 아파트단지 내 자치도서관.
주민 5명이 한 테이블에 모여 조만간 자녀들과 함께 진행할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아파트 주민들로 만 3~11세 아이들 둔 부모들. 모임 이름은 ‘항함크’로 “항동에서 아이와 엄마가 함께 크자”란 뜻을 지녔다. 한 마을 부모가 서로 도와가며 함께 자녀를 키우는 이른바 ‘육아 품앗이’ 모임이다.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런 육아 품앗이 모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길어지며 이런 자치조직이 늘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종전처럼 도우미를 쓰기도 불안한 현실이 이런 바람에 일조했다.
현재 항함크에 합류한 부모들은 모두 38명. 따로 급여는 없고 돌아가며 재능기부 형태로 자녀 60여 명을 돌본다. 나름 교육프로그램 등 체계를 갖추다보니 여성가족부의 지원도 일부 받지만 대부분 회비로 충당한다. 세 자녀를 둔 항함크 대표 강모 씨(39)는 “고무줄놀이부터 연 날리기, 보드게임 등 아이들이 안전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자체적으로 준비한다”고 전했다.
육아 품앗이 모임들에 따르면 특히 이들은 올해 여름부터 활발해졌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까지 강화돼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는 물론이고 학원도 갈 수 없었다. 이때 부모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자녀들을 챙기며 부담을 나눴다. 한 학부모는 “코로나19로 인한 문제점 중 하나가 아이들이 사회성을 기르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육아 품앗이를 통해 또래 친구들과 관계를 맺을 기회가 늘었다”고 했다.
모임 부모들은 육아 스트레스를 더는 것도 모임의 장점으로 꼽았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8월 진행한 ‘코로나19 사회적 건강 1차 설문조사’를 보면, 미취학 아동을 키우는 가정주부의 57.1%가 “최근 우울함을 느꼈다”고 답했다. 다른 집단은 평균 38.2%만 우울함을 호소한 것과 대비된다. 유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이 자녀를 키우는 여성의 스트레스와 직결되는 걸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육아 품앗이 모임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부모들의 소통 창구로도 제격이다. 구로구에 있는 육아 품앗이 모임 ‘행복모임 나눔터’에 참여하는 김모 씨(39)는 “이 동네 이사 온 직후에 코로나19가 터져 막막했는데, 육아 품앗이에 참여하며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이런 자치 모임에 긍정적이다.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여러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서 이웃 간의 품앗이를 통해 육아 부담을 낮추고 심리적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활동”이라 반가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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