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타난 배달 오토바이. 태연히 횡단보도 앞 인도에 보행자들과 함께 멈춰 섰다. 파란불이 들어오자 재빨리 치고나간 오토바이는 중앙선을 넘어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빵빵거리며 반대편 차도로 쌩 달려 나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몇몇 보행자들은 코앞에서 벌어진 일에 깜짝 놀라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침 그 순간, 반대편에서도 짐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 한 대가 차도와 인도를 마구잡이로 넘나들었다. 차도로 달려오다 빨간불에 막히자 곧장 인도로 사람을 헤치고 들어와 다른 횡단보도 앞에 유유히 멈춰 섰다.
도로교통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위험천만한 운행을 일삼는 오토바이와 스쿠터 등의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며 배달 서비스가 크게 늘면서 이륜차 교통사고는 더욱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전국의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7%나 늘어났다. 특히 이륜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들 대다수가 30대 이하 청년들이란 점을 감안하면, 좀 더 적극적인 방지 대책이 요구된다.
○ 이륜차사고 사망자 10명 가운데 4명이 청년
동아일보가 둘러본 동묘앞역 사거리는 오토바이 사고로 악명이 높은 장소다. 최근 3년 동안 전국에서 이륜차 교통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10곳 가운데 하나다. 실제로도 이곳에선 오토바이의 난폭운전과 불법운전이 만연했다. 여러 오토바이가 인도에 아무렇게나 주차돼 있었으며, 상당수 운전자들이 헬멧을 쓰지 않은 채 도로를 질주했다. 인근 시장을 찾은 시민 신모 씨(63)는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쓴소리도 해봤지만 별로 나아지는 게 없다”고 전했다.
사실 이륜차 교통사고는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최근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2016∼2018년 1년 평균 1만8000건 안팎이었던 이륜차 교통사고는 지난해 2만898건으로 확 늘어났다. 올해는 8월까지만 집계된 숫자가 벌써 1만4000건 가까이 된다. 게다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에서 이륜차 사고의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점점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이륜차 사고 사망자는 2017년 전체에서 13.4% 정도였지만 지난해는 14.8%로 늘어났다. 한 도로교통전문가는 “다른 유형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줄고 있는 추세인 것을 고려하면 더욱 심각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륜차 교통사고의 사고 시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경찰에 따르면 일주일 중 금요일과 토요일에, 하루 중에선 오후 6∼8시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게다가 최근 5년간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는 만 18∼39세가 전체의 36.3%를 차지한다. 경찰 관계자는 “배달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시간대에 배달을 담당한 청년들이 연관된 사고가 주로 벌어짐을 알 수 있다”고 했다.
○ “이륜차는 자동차보다 불안전한 이동수단”
“차라리 경찰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단속을 해주면 좋겠어요.”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한 대단지 아파트. 입구에는 커다란 현수막에 이륜차 그림과 함께 “주민들의 안전을 지켜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최근 크고 작은 이륜차 사고가 잇따른 데다, 오토바이 난폭운전 등으로 불안을 느낀 주민들이 내걸었다고 한다.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낮에도 위험하지만 해질 무렵부터 아파트 주차장을 휘젓고 다니는 이륜차들 탓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관리인 이모 씨(62)는 “주민들이 그 나름 조심하고 있지만 오토바이들이 인도 차도를 가리지 않고 속도를 낸다”며 “특히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청소년들도 안전에 둔감하다 보니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 적이 여러 차례”라며 우려했다. 인근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이재서 씨(20)도 “얼마 전 인도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한쪽 팔을 툭 치고 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며 “건물 자전거 거치대들도 이륜차들이 다 점령해 주민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교통안전공단이 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배달 라이더의 주행 행태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33%가 배달 이륜차로 인해 교통사고를 경험하거나 사고가 날 뻔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한다. 응답자들이 꼽은 주요 사고 원인은 ‘인도 등 차도 외 주행에 따른 보행자와의 충돌’이 36.4%로 가장 높았다. 이에 교통안전 관련 기관들은 이륜차 배달 종사자들을 위한 교육을 확대해가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은 5월 ‘이륜차 안전운전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펴내 이륜차에 대한 오해와 주의점 등을 안내하기도 했다.
교통안전공단과 국토교통부도 5월에 출범한 ‘교통안전 공익제보단’을 통해 이륜차 사고 줄이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시민 2000여 명으로 구성된 이 제보단은 7월까지 7836건의 법규 위반 행위를 제보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이륜차 운전자는 자동차보다 불안전한 이동수단임을 명심하고 도로교통법 준수, 택시 및 버스 하차 승객 주의, 횡단보도·보도 통행금지 등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륜차 교통사고, 도시보다 농어촌서 더 위험 ▼
郡 치사율, 전국 평균의 2.7배 안전모 안쓰는 경우 더 많아… 봄-가을 농번기 사망자도 급증
이륜차 교통사고는 도심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농어촌이 더 위험할 때가 많다. 헬멧(안전모)을 쓰지 않은 채 운전하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많고, 한적한 시골길이다 보니 방심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2017∼2019년 발생한 이륜차 교통사고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군 단위 지역의 치사율(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은 7.23명으로 전국 평균(2.63명)의 2.7배였다. 특히 농어촌 이륜차 사고 사망자는 헬멧 착용 습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교통안전공단이 올 초 발표한 ‘2019 교통문화지수 실태조사 보고서’는 “이륜차 탑승자의 안전모 착용률을 조사했더니 군 지역은 평균 76.4%로 전국 평균(84.5%)보다 8.1%포인트 낮다”고 밝혔다. 인구 30만 명 이상 도시는 86.5%, 30만 명 미만 도시는 84.7%로 대도시일수록 안전모 착용률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이륜차 교통사고로 인한 주요 사망 원인은 머리 상해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2016∼2018년 이륜차 사고 사망자의 41.3%가 머리를 다치며 목숨을 잃었다. 승용차의 머리 상해 사망자가 23.7%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봄이나 가을 같은 농번기에는 이륜차 사고에 따른 사망자가 더 많이 발생한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에서 2017년부터 3년간 월별 사망자 수를 따져 보니 10월이 가장 많았다. 전체 사망자(1467명)의 11.4%(167명)가 이달에 목숨을 잃었다. 그다음으로는 5월(10.4%)과 4월(9.9%), 9월(9.7%) 순이었다.
연령별로도 2018년까지 3년간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의 28.6%(235명)가 65세 이상 고령자에게서 발생했다.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5세 미만 젊은층이 2배 이상 많지만 치사율은 고령층이 현저히 높다는 얘기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농번기 등 환경적 영향으로 65세 이상 연령층에서 사망자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과 유관 기관 등은 농어촌 지역의 이륜차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계도활동을 벌이고 있다. 교통안전공단 대구경북본부는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마을을 선정해 ‘1 대 1 맞춤 2분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마을의 이장을 통해 상습적으로 헬멧을 쓰지 않는 주민을 파악한 뒤 이들을 직접 만나 안전모 착용의 필요성을 설명한다고 한다. 교통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반사 지팡이나 농기계에 부착하는 반사지 등 교통안전 물품도 지원한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농어촌 지역에서는 농번기에 안전모 없이 이륜차를 모는 어르신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다”며 “교통사고의 위험이 큰 만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안전모를 착용하고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교통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