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중구 지하철 충무로역 근처에서 만나 김모 씨(48·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김 씨는 본보와 국가금연지원센터가 진행한 길거리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다. 안대를 쓰고 담배 속에 들어있는 캡슐의 냄새를 맡은 뒤 연상되는 물건을 말하는 실험이다. 캡슐담배는 흡연 중 특정 향기가 나게 만든 가향 담배의 한 종류다. 김 씨는 “달콤한 오렌지 냄새만 나면 몸에 나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며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나는 담배라면 아들이 호기심에 피워볼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과거 가향담배는 궐련지에 향이 첨가되는 방식으로 제조됐다. 요즘엔 더 강한 향을 내기 위해 캡슐이 사용된다. 담배를 입에 물면서 필터 속에 있는 캡슐을 터뜨리면 딸기향이나 초콜릿향, 커피향 등이 나는 식이다. 25년간 흡연한 이모 씨(40)는 “일반 담배와 달리 가향담배는 달콤하고 시원한 향이 많이 나서 (몸에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 수 있다”라며 “솔직히 금연 결심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의 2017년 연구에 따르면 만 13∼39세 흡연자 9063명 중 65%는 가향담배를 사용했다. 특히 흡연자 중 여성(73.1%)이 남성(58.3%)보다 가향담배 사용률이 높았다. 연령별로는 남성은 청소년 때인 13∼18세(68.3%), 여성은 19∼24세(82.7%)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다. 흡연 초기 단계부터 가향담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국가금연지원센터 공재형 선임전문원은 “가향물질 자체의 유해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흡연에 대한 거부감을 낮춰 청소년과 여성의 흡연 시작을 유인하게 된다”며 “더 깊게, 더 많이 흡연하게 함으로써 흡연을 지속시키는 것에 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담배에 가향물질 첨가 자체를 규제하는 법령이 없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 브라질, 캐나다 등 해외에서는 가향물질 첨가를 이미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2009년부터 담배에 멘톨향을 제외한 가향물질을 함유할 수 없게 했다. EU는 2016년부터 멘톨향 이외의 가향물질 첨가를 금지하다가 올해 5월부터 멘톨향마저 사용을 제한했다. 담배회사가 가향물질로 흡연의 유해성을 감춰 청소년 등의 담배 접근성을 높인다는 이유다.
정부는 금연 종합대책 중 하나로 가향담배 규제 추진을 마련했다. 관련 개정안도 국회에 발의된 상태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선진국과 비교해 국내법에 규정된 가향담배 규제 수준은 크게 뒤처졌다”며 “가향물질을 첨가해 제조하는 것 자체를 규제하고 담배 성분을 모두 공개하는 법과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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