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곳곳서 강도높은 교육-훈련
봉사단체로 종신대원 등 45명 활동
탐방로 이탈 조난자 수색 일등공신
제주산악연맹 제주산악안전대가 한라산 주변 계곡에서 로프를 연결해 조난자를 이송하는 ‘트롤리안 브리지’ 구조기술을 훈련하는 등 정기적으로 구조 및 수색 훈련을 하고 있다. 제주산악안전대 제공
최근 한라산을 찾는 인파가 탐방로마다 줄을 잇고 있다. 가을 단풍을 즐기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답답함을 산행으로 해소하려는 탐방객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직원들은 탐방객의 안전은 물론이고 자연환경을 지키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응급환자 이송은 119구조대, 조난자 구조와 실종자 수색은 제주도산악연맹 제주산악안전대가 각각 맡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한라산 수호자’로 불린다.
● 불법 출입 많은 신비의 공간
‘한라산 수호자’들이 자주 순찰을 하는 곳 중 하나가 제주시 봉개동 물장오리 오름이다. 제주 경관의 대표 사례로 작은 화산체를 뜻하는 오름 360여 곳 가운데 물장오리는 정상 분화구에 연못을 형성한 산정화구호를 품고 있어 특히 주목을 끈다. 제주 창조신화 주역인 ‘설문대할망’이 산정화구호 속으로 사라졌다는 전설을 간직한 신비한 공간이어서 백록담, 영실 등과 더불어 한라산 3대 성소(聖所)로 일컬어진다. 연중 물이 마르지 않아 과거 가뭄 때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있다.
‘옛 이야기의 보고’인 물장오리 오름은 물장한라산이나 오름을 자주 찾는 이들이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다. 한라산국립공원 구역으로 불법 탐방 단속지역이기 때문이다. 2008년 람사르 습지, 2010년 천연기념물 제517호로 각각 지정되는 등 지형·지질학적 가치와 동식물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 불법행위 단속 인력 부족
지난달 24일 오전 불법행위 단속에 나선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직원 3명과 함께 해발 900∼940m 물장오리 오름 일대를 둘러봤다. 불법 출입이 많은 탓에 분화구를 한 바퀴 도는 오솔길이 생겨났고 정상 부근 급경사 지역에는 훼손 지역을 복구하는 녹화마대가 깔려 있다. 숲속에서 움직임이 포착되자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사람이 아닌 야생 노루가 뛰어오르며 달아났다. 정규 탐방로를 이탈해 국립공원지역을 다니는 이른바 ‘비(非)코스 산행’의 단골 포인트인 쌀손장오리, 테역장오리 오름 주변도 순찰했다.
고병수 단속반장은 “단순한 비코스 탐방객뿐 아니라 약초꾼, 무속인 등이 몰래 출입하는 경우가 있다”며 “단속 인력에 비해 국립공원구역이 워낙 넓다 보니 불법 산행객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 단속인력은 청원경찰 16명, 자치경찰 3명 등 19명이다. 이들 인원으로는 몰려드는 한라산 탐방객을 관리하는 데 역부족인 상황이다. 백록담 정상, 진달래밭, 윗세오름, 영실, 남벽 등 통제소에 직원이 상주하고 주차 관리를 하다 보면 비코스 순찰활동은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첨단장비를 활용하고 있다. 무인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를 늘리고 최근에는 드론(무인항공기) 4대를 투입했다. 야간에는 열화상카메라가 부착된 드론을 띄워 비바크(독일어 ‘biwak’에서 유래한 말로 야영이나 노숙을 뜻함)행위를 단속한다. 비코스 탐방객을 발견하면 드론 확성기로 경고방송을 한다. 임산물 불법채취와 흡연 및 취사, 쓰레기 불법투기 등도 주요 단속 대상이다. 이 같은 단속에도 불법행위는 끊이지 않아 2018년 124건, 지난해 177건이 적발됐고 올 9월 말까지 115건을 단속했다. 불법 및 무질서 행위에 대해서는 자연공원법에 따라 최고 5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 무리한 산행은 금물
탐방로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먼저 국립공원관리소 직원이 출동한다. 무선과 유선으로 교신하면서 119구조대에 협조를 요청하면 구조헬기가 출동해 환자를 이송한다. 지난해에만 한라산에서 탐방객 5명이 숨졌고 올해도 3명이 사망했다. 심혈관, 호흡기질환, 고혈압 등 기저질환이 있거나 전날 과도한 음주가 원인이었다. 골절 및 탈진 환자도 많아 2018년 125명, 2019년 89명이 발생했고 올 9월 말까지 골절은 14명, 탈진은 75명으로 집계됐다.
매년 한라산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은 무리한 산행과 자만심, 준비 소홀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육지 산은 출발점에서 높이 300∼600m 정도 오른 뒤 능선을 타며 오르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라산은 오르막으로 시작해 내리막으로 끝난다. 이 때문에 한라산 탐방을 쉽게 여기지만 정상까지 가려면 1000m가량을 끊임없이 올라가야 하고 비슷한 높이를 내려와야 한다. 그만큼 무릎 등에 가해지는 강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육체적 피로도가 크다.
● 구조·조난 대비 정기훈련 진행
탐방로를 이탈한 조난자를 찾는 데는 제주산악안전대가 일등공신이다. 이 단체는 한라산 등산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조선시대 한라산 탐방은 관료들의 유람이나 제의적 목적이 강했고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현대적 의미의 ‘등산’이 시작됐다.
근대적 스포츠 등산인 알피니즘(Alpinism) 초기 세계 열강은 미지의 험준한 산 정상을 밟는 것으로 자국의 우수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일본 제국주의도 우리나라 산을 정복함으로써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한라산의 첫 동계 등산 기록은 1936년 1월 경성제국대 산악부원들이다. 백록담 정상을 밟고 하산하다가 대원 가운데 마에가와 도시하루(前川智春·당시 20세)가 숨졌다. 공식적인 한라산 첫 조난사다. 한라산에서 두 번째 조난 사망이자 한국인 최초의 조난 사망자는 1948년 1월 한국산악회 전탁 대장이다.
제주 4·3사건으로 한라산 출입 자체가 금지됐다가 1954년 9월 해제된 이후 한라산 등산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졌는데 1961년 1월 서울대 법대 산악부 이경재 대원(당시 20세)이 탈진으로 동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제주지역 산악인들이 그해 5월 의기투합해 ‘적십자산악안전대’를 결성했다. 이 단체가 국내 최초 민간 산악구조대다. 그동안 한라산 인명 구조와 조난자 수색은 물론이고 탐방로 관리 및 개설 등에 상당한 업적을 세웠고 제주지역 산악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계절에 관계없이 한라산 곳곳에서 강도 높은 교육과 훈련을 하면서 조난자 구조 활동을 이어가고 각종 산악행사에서 가이드 역할을 한다. 2005년 적십자산악안전대와 제주도산악연맹이 협의해 현재의 제주산악안전대로 거듭났는데 독립적인 봉사단체 성격이 강하다. 종신대원 11명, 대원 34명 등 모두 45명이 활동하고 있다.
12대 대장을 맡고 있는 오순희 씨는 “전문 산악인이 줄면서 다소 힘들지만 산악안전대는 선배 산악인들의 열정과 한라산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며 “구조 활동은 물론이고 올바른 등산문화를 만드는 데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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