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해임 청원’ 자초한 홍남기 부총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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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로 홍수가 났습니다. 나무 위에 있던 원숭이는 떠내려가는 물고기를 구하기 위해 건져 올렸습니다. 그러나 물을 떠난 물고기는 곧 숨을 거두었습니다. 드와인 엘머가 쓴 ‘문화의 벽을 넘어라’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 선한 의도가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우화입니다.

최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을 둘러싼 마찰음도 선한 의도에서 시작됐습니다. 홍 부총리는 조세 정의를 앞세워 대주주 기준을 10억 원에서 3억 원으로 낮추는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세 부과 기준을 대폭 낮춘 겁니다. 그러자 투자 손실은 전적으로 투자자의 몫인데 이익에는 지나친 세금을 물린다며 투자자들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2일 기준 부총리 해임 청원에 23만 명 이상이 동의해 청와대가 답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임대차 3법’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임대차 3법이란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요구권제, 전월세신고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법안입니다. 전월세상한제는 임대료 상승폭을 5% 이내로 제한합니다. 계약갱신요구권제는 세입자에게 1회의 계약갱신요구권을 줌으로써 현행 2년인 임대차 기간을 4년까지 보장해주는 내용입니다. 이 제도는 개정 법 시행 전 체결된 기존 임대차 계약에도 소급 적용되도록 했습니다.

정부는 규제를 통해 전세금을 낮추고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것이 사회적 약자인 세입자를 돕는 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와 달리 부작용이 봇물 터지듯 생겨나고 있습니다. 전세 물량이 줄면서 가격이 폭등하니 세입자는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월세로 살자니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고통스럽습니다. 그간 상생하던 임대인(집 소유자)과 임차인(세입자)의 관계도 껄끄러워졌습니다. 집을 사고도 세입자 때문에 입주하지 못하거나 자기 집을 제때 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홍 부총리의 이사 문제가 화제입니다. 홍 부총리가 전세로 살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아파트는 주인이 들어온다니 비워줘야 하는데 주변에서 전셋집 찾기가 어렵습니다. 홍 부총리가 팔려고 내놓은 경기 의왕시 아파트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팔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경제 정책을 총괄한 홍 부총리가 자신이 주도한 정책의 피해자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를 향해 자승자박(自繩自縛)이라는 분노 섞인 조롱이 넘쳐납니다.

최근 홍 부총리가 의왕 아파트를 파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 뉴스거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세입자를 내보내기 위해 홍 부총리가 이사비 명목의 위로금을 제공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부총리 해임 건의 글이 또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근시안적인 정책 남발로 휘저어 놓더니 급기야 세입자에게 돈을 줘야 한다는 법도, 상식도 아닌 선례를 몸소 보이냐”고 비판했습니다.

시장의 생리를 거스르는 정책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홍 부총리 스스로 입증했습니다.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고 불편을 가중시킨다면 아무리 의도가 선하더라도 좋은 정책이라 할 수 없습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홍남기#해임 청원#자초#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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