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칙한 반지하가 아늑한 사랑방으로… “이웃과 교류하고 여가 즐겨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5일 03시 00분


[삶을 바꾸는 혁신, 공간복지] <3> 서울 반지하주택 리모델링

①서울 구로구 개봉동 한 주택의 반지하 공간 앞에 ‘작은숲 아지트’라고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②지역맞춤 생활SOC 
공간인 이곳을 조성한 청년건축가 김은석 씨가 테이블에 앉아 공간을 소개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③서울 성북구 종암동 반지하 
공간에 마련된 공유주방 ‘소소한談’에서는 주방 한편에 마련된 다이닝 공간에서 청년건축가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양회성 yohan@donga.com·박영대 기자
①서울 구로구 개봉동 한 주택의 반지하 공간 앞에 ‘작은숲 아지트’라고 적힌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②지역맞춤 생활SOC 공간인 이곳을 조성한 청년건축가 김은석 씨가 테이블에 앉아 공간을 소개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③서울 성북구 종암동 반지하 공간에 마련된 공유주방 ‘소소한談’에서는 주방 한편에 마련된 다이닝 공간에서 청년건축가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양회성 yohan@donga.com·박영대 기자
지난달 26일 서울 성북구 종암동.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2번 출구에서 10분가량 걷다 보니 붉은색 벽돌로 된 3층 내외 규모의 건물들이 촘촘하게 들어선 골목이 나왔다. 좀 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한 다세대 주택 대문 앞에 ‘소소한談’이라고 적힌 정사각형 모양의 낯선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을 거쳐 건물 지하로 내려가 문을 한 번 더 여니 흰타일로 된 벽과 갈색 톤의 싱크대로 꾸며진 부엌이 나왔다.

○ 낡은 주택 반지하의 새로운 변신 ‘소소한談’

‘소소한談’은 성북구 종암동에 조성된 공유주방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추진한 ‘SH청년건축가 주도형 공간복지 프로젝트’ 시범 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졌다. 이 프로젝트는 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서울시내 낡은 주택의 반지하 공간을 지역 내 커뮤니티 시설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이다. 습기와 곰팡이로 인해 거주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약 30.05∼83.2m² 규모의 반지하 공간 6곳을 주민소통방, 공유주방 등으로 조성해 올 4월부터 문을 열었다.

프로젝트에는 지난해 ‘제5회 SH청년건축가 설계공모전’에서 수상한 6개 팀 14명의 청년건축가가 참여했다. SH공사로부터 교육과 컨설팅을 받으며 팀마다 반지하 공간 1곳씩을 맡아 콘셉트를 정하고 수리했다.

33m² 크기의 소소한談은 고려대 건축학과 학생 3명(김민종, 정승준, 김래빈)이 한 팀이 돼 리모델링했다. 현장답사와 주민 인터뷰를 통해 이 일대에 주민이 모일 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다는 점을 발견하고 ‘커뮤니티 다이닝 공간’을 구상했다고 한다.

김민종 씨(27)는 “직접 요리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공간이 활용되고 있다”며 “자취하는 대학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소한談은 싱크대와 인덕션, 전자레인지, 밥솥, 냉장고는 물론이고 각종 조리기구와 식기 등 기본적인 설비와 필수 조미료를 갖추고 있다. 이용자가 필요한 식재료만 가져오면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방 옆 작은 공간에는 6인용 테이블이 있어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사용료는 없는데, 시간대에 따라 예약을 하거나 자유롭게 방문해 이용하면 된다. 올 5월 중순 문을 연 뒤 5개월간 예약만 62건이 들어왔다.

인근에 사는 원모 씨(29·여)는 “지인들과 함께 이용도 해봤고, 이번 달부터는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원데이 베이킹 클래스도 진행할 예정”이라며 “동네 작은 모임공간을 통해 여가생활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 육아 고민 주민들의 사랑방 ‘작은숲 아지트’

서울 구로구 개봉동의 반지하 공간은 ‘작은숲 아지트’라는 이름의 주민 소통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을 맡은 청년건축가 김은석 씨(28·중앙대 대학원 건축학과)는 주변 반경 300m 안에 어린이집이 8곳이나 있다는 점을 반영해 주된 이용층을 ‘육아에 관심 있는 주민’으로 설정했다.

내부에는 6인용 테이블과 의자, 프로젝터와 음향기기 등을 마련해두고 각종 서적도 기증을 통해 구비했다. 입구 한쪽에는 작은 싱크대가 있어 간단한 다과도 준비할 수 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어둡고 습기가 잘 차는 환경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다양한 조명을 설치했고 제습기와 공기청정기도 가동한다.

김 씨는 “아침에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등교시킨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곳에 모여 육아 고민을 함께 나눌 수도 있고, 독서 등 각자만의 여가시간을 보낼 수도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공간 콘셉트에 맞춰 육아 전문가를 초빙해 관련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요즘은 작은숲 아지트에서 강의를 촬영하고, 줌을 통해 비대면으로 송출하고 있다. 입소문을 탄 강의는 공간적 제약이 없어지면서 제주도민도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작은숲 아지트 이용자인 정아름 씨(40·여)는 “아이 학교가 등교수업을 하지 않을 때 이곳에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기도 했다”며 “아늑하면서도 집에서처럼 마냥 퍼져 있게 되지 않고, 자유롭게 오가면서 주민들과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소소한談과 작은숲 아지트 외에도 △구로구 오류동 주민건축학교 ‘오류장’ △서울 양천구 목동 실내가드닝 ‘이너가든’ △양천구 신월동 지역연계 전시공간 ‘십삼월’ △성북구 정릉동 마을 아카이빙 활동 공간 ‘정릉기지’ 등도 SH공사의 지원을 받아 새롭게 선보인 공간이다.

SH공사 관계자는 “1기 청년건축가들이 참여한 이번 시범 사업에서는 반지하 공간을 활용했다면, 최근 출범한 2기 청년건축가들은 빈집을 활용할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청년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반영해 소규모 유휴 공간을 지역 밀착형 공간복지 시설로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공동기획:

#공간복지#소소한담#작은숲 아지트#반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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