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의붓아들 뒤통수 베개 압박사” 검찰주장 왜 안통했나

  • 뉴시스
  • 입력 2020년 11월 9일 16시 05분


의붓아들 친부, 경찰에 부실수사 진정서 내면서 다시 관심
친부 수면제 먹고 깊은 잠…집안에 남은 사람은 고유정뿐
법원 "고유정이 압박사 시켰다고 단언할 수 없어"
침대시트 등 증거물 버려…초동수사 부실이 결국 '화'불러

고유정의 의붓아들은 왜 숨졌을까. 살해일까, 사고사일까. 경찰과 검찰, 법원 모두 원인을 가리지 못했다.

5살 남자아이의 죽음은 끝내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고유정의 의붓아들, 어떻게 숨졌나

지난해 3월2일 고유정(37·여)의 의붓아들(5)이 충북 청주시 상당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의붓아들은 119구급대가 출동했을 때 이미 의식과 호흡이 없는 상태였다.

당시 안방에서 따로 잠을 자던 고씨는 남편의 비명을 듣고 거실로 나와 119에 신고했다.

고씨는 경찰에 “감기에 걸려 다른 방에서 잠을 잤는데, 남편이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아이를 둘러업고 나와 119에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의붓아들이 숨진 침대에서는 아들의 혈흔이 발견됐다.

제주 친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의붓아들은 지난해 2월28일 청주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2017년 11월 재혼한 고씨 부부는 사고 직전 의붓아들을 고씨의 친아들(6)과 청주에서 함께 키우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초동수사는

수사 초기 경찰은 의붓아들과 다른 방에서 잠을 잔 고씨의 살해 혐의를 배제했다.

아이와 같은 침대에서 잤던 아버지의 잠버릇에 의해 아이가 눌렸을 가능성 등 단순 질식사를 의심한 것이다.

이후 고씨의 전 남편 살인 혐의가 드러나면서 뒤늦게 용의선상에 올라갔지만, 고씨는 의붓아들 사망 흔적이 남아 있던 매트리스와 전기장판, 침대 시트 등을 모두 버린 뒤였다.

◇용의자 바꾼 경찰

고유정 의붓아들 사망 사건을 수사한 충북 청주상당경찰서는 지난해 7월24일 충북지방경찰청 브리핑룸에서 “사건 초기부터 타살과 과실치사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디지털 포렌식과 전문가 자문 등 신중하고 세밀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아이의 얼굴에 새겨진 눌림 자국과 입 주변 등을 볼 때 엎드린 상태에서 몸 전체적으로 10분 이상 강한 압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자문 결과를 받았다”며 “질식사의 특징 중 하나인 일혈점(출혈에 의한 빨간 반점)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서는 이동성 시반으로 볼 때 사망 추정 시간을 오전 5시 전후라는 결과를 내놨고, 기도 내 혈액 응고는 질식으로 인한 호흡기 내 출혈로 추정된다”며 “표피박탈은 압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소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의붓아들 몸에서 볼 수 있는 상처는 압박으로 인해 발생했고, 타살 정황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경찰은 고씨가 전 남편 살해 수법과 유사하게 카레 또는 차 등의 음식에 수면제 성분을 넣은 뒤 당시 남편이 잠든 틈을 타 침대에서 엎드려 잠을 자던 의붓아들의 얼굴을 눌러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의붓아들이 10분 넘는 외부 압착에 의해 숨졌다는 소견을 냈다.

경찰은 옆에서 잠을 자던 당시 남편의 다리가 의붓아들을 눌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으나 남편의 체모에서 수면유도제 성분이 검출돼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된 남편에게 ‘혐의없음’ 결론을 냈다.

◇법원의 무죄 판단

지난 5일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살인·사체손괴·사체은닉 혐의로 기소된 고씨의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구체적으로 “의붓아들이 고유정의 고의에 의한 압박 행위가 아닌 함께 잠을 자던 아버지에 의해 눌려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의붓아들이 고의에 의한 압박으로 사망했다고 해도 그 압박 행위를 피고인이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망원인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상고 기각했다.

앞서 검찰은 외부인이 들어온 흔적이 없는 집안에서 5살 아이가 누군가에게 고의로 눌려 숨졌다면 범인은 당시 남편과 고씨 둘 중 한 명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지난 2심때 증인으로 출석한 법의학자의 말을 종합해 의붓아들의 사인은 누군가의 외력에 의한 압착성 질식사이고, 범행 추정 시간에 고씨가 깨어있던 점 등 의심스러운 행적을 감안, 피고인인 고씨가 의붓아들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켰다고 주장했다.

당시 재판부는 “사망 전 피해자가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한 상태였고, 체격도 왜소하며 친부도 깊은 잠에 빠져있던 점을 감안할 때 가능성은 낮지만, 의붓아들이 친부의 다리 등에 눌려 질식사하는 ‘포압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재판부도 아이가 잠든 아버지 다리에 눌려 숨지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판단했다. 범행동기나 사망원인, 사망시간도 간접 증거만으로는 특정하기 어렵다고 판단, 의붓아들 살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친부, 경찰 부실수사 진정 제출…경찰 “안타깝다”

고씨의 두 번째 남편이자 의붓아들의 친부는 9일 오전 11시 살해 사건을 수사했던 청주상당경찰서에 대한 감찰을 요청하는 진성서를 경찰청에 제출했다.

법률대리인 부지석 변호사는 “고유정의 의붓아들 살해 혐의 무죄 판결의 책임은 경찰에 있다”며 “사건 발생 당시 고씨를 조사했다면 지금과 다른 결과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부 변호사는 “일반 공직자들의 부실 수사에 대한 징계, 진상 조사 여부는 알 길이 없다”며 “납득이 가지 않는 판결이 나왔음에도 자체 조사를 하지 않는 경찰에 대해 진정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충북 경찰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고씨는 의붓아들이 숨지기 8일 전 자택 PC로 ‘질식사’를 검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장기간의 수사 끝에 지난해 9월30일 다수의 정황 증거를 바탕으로 고씨를 최종 피의자로 지목,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이 제시한 증거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약물 감정 결과, 범행 전후 고씨의 행적,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의 수사자료 분석, 전문가 의견 등이다.

하지만 범행 도구 등 직접 증거(스모킹건)는 발견하지 못했다.

서원대학교 김영식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간이 많이 지나면서 여러 증거가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초기 수사 방향이 결정적이었다”며 “사건 초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으면 달려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

충북지역 한 경찰 관계자는 “외부 침입 흔적이 없고, 집안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복합적인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해야 했다”며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가능성을 열어두지 못한 채 사건을 해결하려 한, 리더십 부재에서 온 참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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