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50대 남성의 음주운전으로 6세 남자아이가 목숨을 잃었던 안타까운 사고는 많은 이들의 공분을 일으켰다. 당시 이 남성은 대낮에 만취한 채로 차를 몰다 인도에 설치된 가로등을 들이받았고, 가로등이 인근 햄버거 가게 앞에 있던 아이를 덮쳤다. 아이의 아버지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음주운전은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비극”이라고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국내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지난해보다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음주운전 사고는 1만126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9659건보다 16.6%나 증가했다. 교통 전문가들은 “특히 버릇처럼 음주운전을 하는 ‘상습 음주운전자’들이 줄어들지 않고 있는 만큼 ‘음주운전 방지장치’ 장착 등을 시급히 논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윤창호법’ ‘코로나19’에도 줄지 않는 음주운전
올해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증가가 심각한 것은 1년 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돼 술자리나 차량 통행량은 비교적 줄었는데도 음주운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8월에는 서울 동작구에서 음주운전자가 골목길을 걸어가던 50대 여성 2명을 들이받아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같은 달 경기 수원에선 음주운전 차량이 앞 차량을 들이받고 달아나 차에 타고 있던 경찰관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일명 ‘윤창호법(개정 도로교통법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2018년 12월 18일 시행된 뒤 지난해는 음주운전이 다소 줄어드는 양상이었으나 올해는 2017년, 2018년 수준으로 다시 돌아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교통전문가들은 특히 음주운전 사고는 대부분 상습 음주운전자들로 인해 벌어지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경찰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음주운전 적발 대상자의 44.5%가 이미 음주운전으로 붙잡힌 전력이 있는 ‘재범’이었다. 법망으로 거르지 못한 경우까지 고려하면 상습 음주운전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음주운전의 가장 큰 원인은 “습관”이라 지적했다.
이에 국내에선 차량 시동장치와 연결된 ‘음주운전 방지장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하는 이의 차량에 시동이 걸기 전 음주 여부를 측정하는 장치를 장착해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만 시동이 걸리게 하는 장치다.
○ “92.9%가 음주운전 방지장치 도입 찬성”
음주운전 방지장치는 1986년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시작으로 미국과 스웨덴, 일본, 영국, 핀란드, 호주 등에서 보편화되고 있다. 노르웨이는 지난해 1월부터 모든 상업용 버스에 설치를 의무화했다.
국내에서도 도입 논의는 2017년부터 이어졌다. 하지만 비용과 인권 문제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현재 개당 약 200만 원에 이르는 구입 및 설치, 유지 등의 비용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캘리포니아주는 월 60달러(약 7만 원) 정도를 상습 운전자가 부담하도록 하지만, 국내에선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장치를 장착하면 음주운전 전력이 드러난다는 이유로 사생활 침해와 이중처벌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해당 장치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경찰청이 지난해 2월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92.9%가 음주운전 방지장치 도입에 찬성했다. 송민헌 경찰청 차장은 지난달 27일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에서 “시동을 켜기 전 음주 측정해 단속 수치가 나오면 자동으로 시동을 걸 수 없게 하는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상습 음주운전자의 차에 의무 설치하도록 국회와 협의해 필요한 법 개정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안전정책본부장은 “올해 음주운전 사고 증가세를 고려했을 때 지금이야말로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도입해 음주운전을 뿌리 뽑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음주운전 방지장치를 장착한 상습운전자에게는 운전면허 제한 기간을 장치 장착 기간만큼 줄여주는 등의 방법도 관련 제도의 연착륙을 이끌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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