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촌이내 금혼’ 위헌 공방…“한국이 유일” vs “단순비교 안돼”

  • 뉴스1
  • 입력 2020년 11월 12일 17시 17분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를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한 민법조항이 위헌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2020.11.12/뉴스1 © News1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를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한 민법조항이 위헌인지를 판단하기 위한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2020.11.12/뉴스1 © News1
“8촌 이내 혈족의 혼인을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금지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 혼인의 자유를 침해한다.”(청구인 측 대리인)

“가족 및 친족제도 관련 입법에는 그 나라의 문화적 배경과 친족 관념이 반영되므로 외국과 단순비교해서는 안된다.”(피청구인 측 대리인)

8촌 이내 혈족 사이의 혼인을 금지하고 이를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한 민법조항이 위헌인지를 두고 헌법재판소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헌재는 12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A씨가 “민법 제809조 제1항 등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A씨와 B씨는 2016년 5월 혼인신고를 했다. 이후 B씨는 2016년 8월 A씨와 6촌 사이임을 이유로 혼인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1심법원은 ‘8촌 이내 혈족 사이 혼인신고이므로 민법에 따라 무효“라고 판결했다.

A씨는 항소심 진행 중 민법 제809조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2018년 2월 헌법소원을 냈다.

민법 제809조 제1항은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며 근친혼을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민법 815조에 따른 혼인무효 사유가 된다.

청구인 A씨 측은 이날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3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은 4촌 이상 방계혈족 사이의 혼인을 허용하고 있다“며 ”8촌 이내 혈족의 혼인을 금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민법 조항의 근친혼 금지의 범위는 지나치게 광범위하다“고 주장했다.

또 ”유전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6촌 내지 8촌인 혈족 사이 혼인의 경우에는 그 자녀에게 유전질환이 발현된 가능성이 비근친혼 자녀의 경우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청구인 측은 ”과거와 달리 혼인은 가(家)와 가(家)의 결합보다는 인격 대 인격의 결합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며 ”8촌 이내 혈족 혼인의 금지는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타당한 윤리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해관계인 법무부장관 측은 ”유전학적 측면에서 근친혼의 경우 유전적 질병의 발현 위험이 커진다는 점이 인정되는 이상, 이를 고려함이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맞섰다. 이어 ”해당 조항은 우리나라의 친족 관념 및 법감정을 존중하고 유전학적 고려까지 했다는 점에서 문제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법무부장관 측은 또 ”근친혼이 제한되는 범위는 민법상 친족범위에 한정되는 반면, 그 범위에서는 혼인 질서와 뒤섞이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입법상 공익이 상당하므로 법익의 균형성도 충족된다“고 밝혔다.

공개변론에는 현소혜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청구인 측)와 서종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무부장관 측), 전경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명예교수(직권지정 참고인)가 참고인으로 출석해 의견을 진술했다.

청구인 측 참고인 현 교수는 ”근친혼은 혼인과 가족이라는 사회의 기초적 생활단위를 보장하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한도에서는 반드시 금지되어야 하지만, 그 제도적 보장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개인의 자유를 무익하게 또는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

피청구인 참고인 서 교수는 ”근친혼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는 해당 공동체의 구성원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므로, 근친혼 금지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입법재량 사항이고, 입법자가 정한 근친혼 금지의 범위가 외국 입법례에 비하여 지나치게 넓다고 해서 반드시 위헌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 일부국가에서 사촌간 혼인을 인정한 것은 딸들에게 재산을 상속해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문제까지 고려한 것“이라며 ”우리나라가 반드시 그걸 따라가야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직권지정 참고인 전 명예교수는 ”심판대상 조항이 외국 입법례와 같이 특정 인적집단에 대해 근친혼을 금지한 것이 아니라 촌(寸) 개념을 사용해 근친혼 금지의 범위를 설정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합리적인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조항의 위헌성의 문제는 생물학적·유전학적 정설에 부합하는지가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변화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날 가족개념이나 친족관념에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중이나 당내를 기반으로 상례나 제례가 유지·실천되고 있는 한, ’8촌이 곧 근친‘이라는 관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보편타당한 관념이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 명예교수는 그 관념을 반드시 혼례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역별로 문화차이가 매우 크다. 또 지역·사회계층 변동을 고려해 근친의 범위를 자세히 연구한 논문도 없다“며 ”그런 심각한 연구가 없는 상태에서 솔직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우생학(유전법칙을 응용해서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단어를 두고 작은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날 입법자의 입법목적에 대한 질문에 현 교수는 ”입법자들이 민법에 양자에 대한 부분을 포함한 것을 보면 우생학적보다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부분을 더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등 ’우생학‘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사용됐다.

이후 발언에 나선 전 명예교수는 ”우생학이라는 단어는 나치가 사용했고 그 당시 미국 법학자들 일부가 동조하고 사용한 언어“라며 우생학이라는 단어가 법률용어처럼 사용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오늘 우리가 얘기하는 것은 규범적 이야기다. 오늘 논의에 우생학이라는 용어가 나오는 것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후 변론에서 청구인 측 대리인은 ”근친혼 금지조항에 따르면 상대방이 8촌 이내 혈족이기만 하면 언제든지 기간에 상관없이, 당사자의 사망후에도 혼인은 무효가 된다. 만일 자녀가 있다면 혼외자가 되고 혼인파탄 유책사유에 대한 판단 없이 축출이혼도 가능하다“며 ”청구인 또는 그 누구도 인격권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받지 않도록 해당 조항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피청구인측 대리인은 ”근친혼의 범위를 어느 촌수까지 제한하면 위헌이고 그 이상이면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 가능한지 그 자체로 의문“이라며 ”근본적으로 입법자의 입법재량을 침해한다“고 말했다.

이어 ”친족이라는 개념에 대해 법령이 규정하고 있는 우리나와 같은 입법례는 흔치 않다. 우리나라의 친족에 대한 개념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것“이라며 ”민법상 친족의 범위는 다른 입법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국민의 문화적·심리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근친혼의 범위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입법자가 국민의 법감정을 반영해 입법을 통해 해야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논의 내용을 토대로 근친혼을 금지하는 민법조항이 위헌인지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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