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 “폰 비번 제출 거부 피의자 처벌 추진”…법조계 “양심의 자유 침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2일 21시 05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휴대전화의 비밀번호 제출을 거부하는 피의자를 처벌하는 법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에 놓고 검찰 안팎에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법안이 헌법에 보장된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 ‘비밀번호 강제 해독’ 언급에 “반헌법적” 비판 쏟아져


추 장관은 이날 오전 8시 12분경 법무부 알림 문자를 통해 “피의자가 휴대폰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는 경우 영국 등 외국 입법례를 참조해 법원의 명령 등 일정요건 하에 그 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추 장관의 지시는 신라젠 취재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한동훈 검사장(47·사법연수원 27기)의 아이폰을 올 6월 압수수색했으나 비밀번호를 확보하지 못해 아직까지 이를 열어보지 못한 데 따른 것이다.

추 장관은 또 올 7월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유심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한 검사장을 폭행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52·29기)의 기소 과정이 적정했는지 대검 감찰부에 진상을 파악하라고 지시했다. 서울고검 감찰부는 지난달 27일 정 차장검사를 독직 폭행 혐의로 기소했고, 대검찰청은 5일 법무부에 정 차장검사의 직무배제를 요청했다. 추 장관은 “총장이 직무배제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대검 감찰부장이 결재에서 배제되는 등 절차상 문제점이 제기됐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피의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위법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영장전담판사 출신 변호사는 “피의자의 머릿속 정보를 압수 대상으로 보겠다는 취지다. 군사정권 시절도 아니고 비밀번호를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며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부정하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한 검사장은 “헌법과 인권보호의 보류여야 할 법무부장관이 당사자의 헌법상 권리인 방어권 행사를 악의적이라고 비난하고, 이를 막는 법 제정 운운하는 것은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강조해온 현 정부의 검찰개혁 방향과도 맞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인권보장을 위해 수십 년간 힘들여 쌓아올린 중요한 원칙들을 하루아침에 이렇게 유린해도 되느냐. 그것도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정부에서”라며 “법률가인 것이 나부터 부끄럽고, 이런 일에 한마디도 안하고 침묵만 지키는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들한테도 솔직히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추 장관은 이날 오후 5시 경 페이북에 글을 올려 “영국 ‘수사권한 규제법(RIPA)’은 2007년부터 암호를 풀지 못할 때 수사기관이 피의자 등을 상대로 법원에 암호해독명령허가 청구를 한다”며 “법원의 허가결정에도 불구하고 피의자가 명령에 불구하면 일반사범에 대해 2년 이하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RIPA는 2000년 테러 범죄 등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됐고, 영국에서도 본인 동의 없이 인터넷, 이메일, 전화통화 기록 등을 조회할 수 있게 해 ‘빅브라더’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독을 강제하는 조항은 인권 침해 논란이 있어 6년 이상 발효가 유보됐다. 검찰 관계자는 “영국에서는 테러리스트에 국한해 그러한 법이 있다고 알고 있다. 현직 검사장이 테러리스트와 동급이란 얘기냐”고 말했다.

● 장관의 대검 감찰부 직접 지시도 위법 논란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라임과 옵티머스 사건 관여 여부, 특수활동비 등에 이어 대검찰청 감찰부에 잇따라 직접 지시를 내린 것 역시 위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청법 8조에 따르면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휘는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하게 돼있다. 이를 장관 탄핵 사유로 보는 시각도 많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서울고검에서 정 차장검사에 대한 기소를 결정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서울고검은 “검사들 의견을 종합해 결정한 사안으로서 감찰부장이 주임검사로 기소한 것이고, 불기소 의견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 장관은 서울고검 감찰부 주임검사가 정 차장검사의 기소에 회의적 의견을 보여 감찰부장이 사건을 자신에게 재배당해 기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 장관의 지시가 현재 서울고검에 항고된 추 장관 아들의 군 복무 당시 휴가 특혜 의혹 사건의 재수사 여부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현직 검사는 “서울고검에 기소 적정성 운운하는 것은 항고사건을 맡은 서울고검에 재기수사 명령을 못하도록 압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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