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성향의 대표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가 휴대전화의 비밀번호 제출을 거부하는 피의자를 처벌하는 법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규탄하는 성명을 13일 냈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추 장관을 향해 “지시를 즉각 철회하거나 중단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민변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창립 멤버로 활동한 곳이다. 정의당이 전날 추 장관의 사과를 요구한데 이어 진보 진영에서 추 장관이 추진하는 법안을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 민변 “헌법상 권리 침해”, 참여연대 “검찰개혁에 역행”
민변은 13일 ‘추 장관의 헌법상 진술거부권을 침해하는 법률 제정 검토 지시를 규탄하며 즉시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공개했다. 민변은 “헌법은 누구나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않을 원칙을 밝히고 있다”면서 “이 원칙 하에 형사소송법도 피의자와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휴대전화 비밀번호는 당연히 진술거부의 대상이 된다. 이를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를 가한다면 헌법상 진술거부권과 피의자의 방어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대 국회에서도 정보저장매체의 접속에 대한 소유자의 협력 의무를 부과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과태료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추진됐지만 법원행정처가 “위헌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변은 “추 장관은 법률 제정 검토 지시를 반드시 철회해야 한다”며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도외시한 이번 지시에 대해 자기 성찰과 국민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사법방해죄’ 도입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고 검찰개혁에 역행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과거 이명박 정부가 도입을 추진했다가 인권 침해 논란이 일어 폐기된 ‘사법방해죄’를 다시 도입하겠다는 것”이라며 “검찰에게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법무부의 발상은 헌법 취지에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며 검찰의 반인권적 수사관행을 견제해야 할 법무부가 개별사건을 거론하며 이러한 입법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며 “법무부는 반인권적이고 검찰개혁에 역행하는 제도 도입 검토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 秋, n번방 사건 거론하며 강행 의사 내비쳐
추 장관은 민변 등의 규탄 성명이 나온 지 약 1시간 뒤 추가 입장문을 공개하며 법안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추 장관은 “법안에 관한 연구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n번방 사건’과 한동훈 검사장 사례 등이 계기가 됐다”면서 “디지털 증거에 대한 과학수사와 인터넷상 아동 음란물 범죄 등 새로운 형태의 범죄에 관한 법집행이 무력해지는 데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앞서 추 장관은 12일 휴대전화 압수수색 과정에서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로부터 폭행을 당한 한동훈 검사장의 사건만을 언급했지만 n번방 사건을 갑자기 추가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전날에는 영국의 테러리스트 방지법을, 이번에는 n번방 사건을 끌어들여 무리하게 법안 추진의 명분을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검사장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추 장관이) 오로지 자기편 권력비리 수사에 대한 보복을 위해 마음대로 내다 버리고 있다”는 추가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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