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최근 CJ대한통운, 쿠팡 등 물류업체의 배달 노동자들이 과로로 숨졌다는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의 노동자 김용균 씨의 사고사를 계기로 마련된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이 올해 1월부터 발효됐음에도 불구하고 일터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각박한 현실도 여전합니다.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한 해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2000명에 이릅니다. 하루 평균 5, 6명이 일터에서 살기 위해 일하다 죽어간다는 얘깁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입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압축적 고도성장의 이면에 열악한 노동자들의 삶이 있습니다.
13일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전태일 열사(사진) 50주기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전태일은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불을 지핀 인물입니다. 그는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봉제 보조원, 재단사 등으로 일하며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인권 침해에 맞서 싸웠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불꽃으로 사라지며 남긴 마지막 외침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였습니다.
당시 평화시장 근로자는 대부분 스무 살 안팎의 어린 여성들로, 환기도 되지 않는 좁은 방에서 하루 16시간씩 재봉틀을 돌렸습니다. 쉬는 날은 한 달에 한두 번, 하루 급료는 100원에 불과했습니다. “사회는 이 착하고 깨끗한 동심에게 너무나 모질고 메마른 면만을 보입니다. 저는 피 끓는 청년으로서 이런 현실에 종사하는 재단사로서 도저히 참혹한 현실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당시 전태일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쓴 편지 중 일부입니다. 하지만 어린 노동자의 외침을 들어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전태일의 희생으로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사회문제로 부각됐습니다. 1970년대에만 전국에서 2500여 개의 노동조합이 생겨났습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기폭제가 됐습니다. 각종 입법을 통해 노동권은 신장되었습니다.
주 80시간 노동은 52시간 노동으로, 더 쉬게 해 달라는 외침은 주 5일제 근무로, 저임금에 대한 호소는 최저임금제로 법제화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청와대에서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습니다. 무궁화장은 국민훈장 중 1등급에 해당합니다. 그의 동생인 전순옥 전 국회의원과 태삼, 태리 씨가 대신 받았습니다.
무궁화장이 노동계 인사에게 추서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문 대통령은 “오늘 훈장은 노동 존중 사회로 가겠다는 정부 의지의 표현”이라며 “50년이 지난 늦은 추서이지만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분신 후 수없이 많은 전태일이 살아났다. 저는 전태일 열사의 부활을 현실과 역사 속에서 느낀다”고 덧붙였습니다.
노동자의 삶이 조금씩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 곁에는 여전히 힘들어하는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모두의 인간다운 삶,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실현될 때까지 전태일이 남긴 메아리는 영원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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