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숨만 쉬고 지냈다”…‘제로 소득’ 내몰린 2030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5일 03시 00분


[코로나가 할퀸 삶]<2>
일자리 붕괴되며 지원금-알바 연명… 미래설계 꿈도 못꾸는 2030

소득이 끊긴 젊은이들의 삶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미래 중산층’들의 삶은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해외 진출을 꿈꾸던 여성은 전동킥보드를 타고 ‘배달 알바’를 시작했고 여행사를 다니던 직장인은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배우며 전직을 준비한다. 남들이 부러워하던 항공사에 취업한 2년 차 승무원은 적금을 깨고 카드를 잘라낸 뒤 회사 정상화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제로(0) 소득’에 내몰린 2020년 2030세대들을 만났다.


○ 어느 날 삶이 멈췄다…해외취업 꿈 접은 30대 여성

“집 근처엔 주문이 많지 않거든요. 4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이 동네까지 와서 음식 배달을 해요.”

13일 오전 11시 50분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박모 씨(30·여)가 전동 킥보드를 타고 서둘러 나왔다. 박 씨는 등에 ‘배민 커넥트’라는 글자가 쓰인 가방을 메고 헬멧과 검은색 마스크를 썼다. 그는 경력 3개월 차 초짜 ‘배달 라이더’다. 일산 집을 나와 전동 킥보드를 들고 지하철을 탄 뒤에 손님이 많은 마포로 와서 돈을 번다.

코로나19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 박 씨의 꿈은 더 넓은 세상에서 원 없이 살아보는 것이었다. 5년간 다니던 중소기업을 그만두고 1년 동안 해외에 머물며 새로운 일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출국 2주 전 코로나19 사태로 비행기가 취소됐다. 박 씨는 그대로 발이 묶였다.

해외정착 자금으로 쓰려던 퇴직금 1000만 원은 금세 사라졌다 실업급여까지 끊기자 소득은 말 그대로 ‘제로(0)’가 됐다. 박 씨는 “8월 배달 라이더를 시작해 한 달에 8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 번다”고 말했다. 날씨도 추워지고 있지만 다른 선택이 없다. 오히려 추위로 주문이 느는데 배달원이 줄면 건당 받는 배달료는 9000원까지 오른다는 것에 기대를 걸고 있다. 코로나19는 박 씨의 삶을 어떻게 바꿨을까.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삶이 갑자기 멈췄다”고 말했다.

○ “집에서 숨만 쉬고 지냈다”…전직 준비하는 여행사 직원

무급휴직 5개월째를 맞은 여행사 직원 이모 씨(33)는 요즘 컴퓨터 설계소프트웨어인 오토캐드를 배우고 있다. 내진 설계 관련 회사로의 이직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요즘 아파트시장이 호황이라고 들었다. 위기를 겪어보니 의식주(衣食住) 업종이 그나마 낫다. 위기에도 먹고 마시고 입긴 해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실업자나 전직(轉職)을 희망하는 근로자를 위해 직업 훈련 비용을 최대 500만 원까지 지원해주는 ‘국민내일배움카드’로 수강료를 대고 있다.

휴직 초기엔 앞이 캄캄해 생활비부터 최대한 줄였다. 그는 “집에서 숨만 쉬고 있으면 한 달에 20만 원으로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혹시 몰라 대출도 1500만 원을 받았다. 주변에 알리지 않고 ‘몰래바이트(비공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도 있다. 무급휴직 지원금을 받으면 다른 데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운이 좋으면 코로나19 위기에도 일감이 있는 의료, 제약, 정보기술(IT) 업종으로 전업을 하고 ‘제로소득’을 탈출할 수 있다. 국내의 한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은 올 7월 이후 4개월 동안 7명을 뽑았다. 투자금 유치에 성공하고 해외 진출까지 준비하는데 사람은 모자랐기 때문이다. 대기업에서 일하다 이 회사로 이직한 A 씨(38)는 “성과급이 없어 연봉은 비슷하지만 기본급은 오히려 더 올랐다. 스타트업의 자율적인 분위기도 좋다”고 했다.

○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2년 차 항공사 승무원

항공사 승무원 이모 씨(25·여)에게 입사 2년 만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3월 말 휴직이 시작됐다. 회사가 문을 닫는 건 아닌가, 겁이 덜컥 났다. 대기업, 스타트업을 가리지 않고 입사지원서도 내고 면접도 여러 번 보며 맘고생도 했다. 하지만 좀 더 버텨볼 생각이다. 이 씨는 “막상 떠나려고 하니까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이 좋아서 왔으니 일단은 버텨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대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정부 지원금으로 월급의 절반 정도가 나온다. 생활비만 써도 빠듯하다. 신용카드 두 장 중 한 장은 잘라 버렸다. 한 달에 150만 원씩 넣던 3년 만기 적금도 깼다.

젊은이들의 ‘제로소득’ 불안감에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학습효과도 깔려 있다. 당시 일자리에서 밀려났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아버지 세대들의 고통을 보고 자라난 세대이기 때문이다. 면세점에 근무했던 안모 씨(29)는 “아버지 세대에 그런 분들이 많았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일터에서 나와야 한다는 게 더 두렵다”고 말했다. 이어 “멀쩡한 일자리를 지킨 친구들이 저만치 달려가는 걸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는 게 앞으로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코로나가 할퀸 삶#일자리 붕괴#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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