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극단선택’ 원전연료 가스 누출사고, 직원 책임으로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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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1월 26일 0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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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0일 발생한 한전원자력연료(KNF) 육불화우라늄(UF6) 누출 사고가 당시 현장에 있던 사고 피해자들의 책임으로 일단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고 조사를 맡았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지난 23일 공개한 ‘KNF 제2공장 기화실 UF6 가스 누출 사건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사고는 작업 내용 및 방호장비 착용 필요성 등에 대한 사전검토 및 허가 없이, 주작업자가 유지보수지침서를 준수하지 않고 밸브 너트를 풀고 흔들다가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는 총 4명의 직원이 있었고, 밸브를 흔들었다는 주 작업자는 이 사고로 피폭되지는 않았으나 신체 표면 22%에 화상을 입어 약 1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다른 직원들은 비교적 부상이 가벼워 연고를 처방받는 등 가벼운 조치로 끝났다.

KINS는 이밖에 작업자들이 사전 특수오염작업 허가를 받지 않은 탓에 방호장비를 착용하지 않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사건보고가 늦었다며 작업절차서 개선 및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KNF 측에 약 800만 원의 과태료 부과를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서는 대전원자력안전협의회 및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전달됐고, KNF 현장 안정검증 등을 거쳐 사고는 이대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사고 종결 후 KNF 자체 징계위원회를 앞두고 당시 사고 피해자였던 직원 A씨(39)가 지난 18일 ‘사고 책임을 떠넘기고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는 수십 장의 메모를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KNF 측이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A씨가 사고 직후부터 숨진 당일까지 수기와 휴대전화로 남긴 메모에는 “지시에 따랐을 뿐인데 나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KINS 면담 전 교체 작업이 아닌 점검 중 사고가 났다고 말하라고 압력을 해왔다”, “KINS 현장검증을 앞두고 또 거짓진술을 하라고 압력이 왔다. 너무 지치고 두렵다”는 등 고발성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충격을 줬다.

특히 사고 직후인 8월 11일 KINS와 첫 면담을 나눴던 A씨를 비롯한 직원 3명의 질의응답 내용을 KNF 측이 파악해 정리한 문서와 이후 상사들이 거짓 진술을 강요하는 내용이 담긴 녹취록까지 등장해 파문이 일 전망이다.

A씨가 남긴 녹취록에는 상사 2명과 A씨를 비롯한 직원 2명의 음성이 담겼다. 대화를 나누던 상사들은 A씨에게 “우리가 정리해본 내용은 이렇다”며 미리 준비한 진술 내용을 숙지시켰고, “거짓말을 못하겠는데 어떻게 하냐”는 A씨의 말에 “그럼 잘 모른다고 해라”라고 답했다.

한 상사는 “(말을)잘 못하면 우리가 당할 수도 있다”고도 했다.

당시 A씨와 현장에 함께 있던 동료 등 일부 직원들은 이 사고가 “사고 전날(9일)부터 예정된 교체 작업이었고, 작업에 필요한 조치를 요청하는 등 관리자에게 보고했고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이 사건 관련 책임을 묻게 된 근로자들에게 회사 측이 대본까지 써주며 거짓 진술을 종용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밸브를 흔들었다고만 말하라고 했다. 이후 KINS가 의문을 제기하자 너트를 풀고 흔들었다고 하라고 지시했다”는 등 구체적인 사례를 꼽았다.

이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KINS 조사를 토대로 사고를 바라봐야 하고, 원자력 관련 사고인 만큼 외부 유출과 피폭 등에 집중했다”며 “사고 당사자들이 모두 인정한 내용을 토대로 마무리가 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KNF 관계자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만큼 사고를 결코 이대로 덮을 생각은 없다. 다만 조사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믿고, 자체 재조사를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족들께서 고인이 남긴 메모 등을 전해주신다면 이를 토대로 다시 조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수사기관 등 외부에서 이 사고 관련 조사를 하겠다면 성실하게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KNF에서 11년간 근무하며 화합물 변환장비 운용을 담당하던 A씨는 지난 17일 밤 죽음을 암시하는 글을 남기고 집을 나선 뒤 18일 새벽 자주 운동을 다니던 산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가 남긴 글과 유족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당시 사고는 UF6를 변환하는 장비의 밸브를 교체하던 중 발생했고, A씨는 이 작업 중 스크러버(집진기)를 작동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합류했다가 변을 당했다.

당시 함께 근무하던 A씨의 동료들에 따르면, A씨는 당일 콜드트랩(가스 누출을 막기 위한 전처리)이 완료됐다는 말만 들었을 뿐, 교체 작업에 대한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대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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