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세 유아가 차에 치여 숨지는 등 올해만 두 차례 교통사고가 발생한 광주 북구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 횡단보도가 사라진다.
어린이가 차에 치여 중상을 입는 사고가 나 횡단보도를 설치했다가 또 다른 어린이가 숨지자 어른들은 신호등 설치 대신 횡단보도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사람 안전·보행자 중심의 도로교통시스템이 아닌 차량 우선, 교통 흐름 중심의 사고 방식이라는 씁쓸한 지적이 나온다.
26일 광주시에 따르면 광주시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스쿨존 사고 발생 지역인 광주 북구 운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인근에서 2차례 간담회를 진행했다.
주민대표단과 광주시, 북구청, 경찰청, 도로교통공단 관계자, 교통전문가, 권익위원 등 40여명이 참여했다.
1차 간담회에서는 아파트 1단지 주민과 2단지 주민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2차 간담회에서는 3단지 주민대표와 주변 학교, 유치원 교사까지 토론에 가세했다.
쟁점은 사고가 난 횡단보도에 신호등을 설치할 것이냐, 사고지점의 횡단보도를 폐쇄하고 35m를 더 걸어 사거리 횡단보도를 사용하게 할 것이냐였다.
장시간 토론 끝에 일단 아파트 단지 진·출입 교차로 주변에 있는 횡단보도 2곳을 모두 없애고 무단횡단을 방지하기 위해 보행자 차로 진입 금지 펜스를 신규 설치하기로 했다.
과속탐지기 설치, 어린이보호구역 강조 등의 조치를 취하고 3개월 동안 살펴본 후 다시 간담회를 열어 신호등 설치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신호등을 설치하자는 1단지 쪽 대표들이 한 발 양보해 어렵게 합의를 도출할 수 있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호기 설치가 사고 예방과 차량 소통을 아우르는 현실적 방안으로 고려됐으나 주민들이 보행자 통행 불편을 감수하고 횡단보도를 폐지하는 방안을 선택했다”며 “안전 측면에서는 보행자 차로 통행 자체가 금지돼 더 효과적인 사고 예방 대책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사고가 난 곳은 아파트 1단지 정문과 2단지 후문이 만나는 진출입로 사거리로 1단지 정문 우측 횡단보도 위다.(지도 왼쪽 빨간 동그라미)
이곳은 지난 5월28일 무단횡단하던 어린이가 무면허 과속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한 후 횡단보도가 생겼다.
경찰청 등 교통 유관기관이 현장점검을 통해 6월9일 횡단보도와 과속방지턱, 방호울타리 등을 설치했다.
당시에도 신호등과 과속·주정차 단속 카메라 설치 요구가 있었으나 예산 상의 문제 등으로 설치되지 않았다.
5개월여가 지난 11월17일, 이번엔 사망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횡단보도 앞에 정차 중이던 화물차량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일가족을 발견하지 못하고 출발하면서 3세 유아가 숨졌다.
이번 사고 발생 후에도 신호등과 과속·주정차 단속 카메라만 설치됐더라면 사고는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2차례 간담회 결과는 횡단보도 폐쇄였다.
주민들 간에도 입장차가 컸지만 신호등을 설치하면 출퇴근시간은 물론 차량 정체가 심해 운전자들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더 거셌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신호등을 설치해도 차량 운전자들의 불편함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횡단보도를 폐쇄하는 방안도 보행자들이 35m를 돌아서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지만 심각하게 불편할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두 방안 모두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문제는 관점이다. 신호등을 설치하든 횡단보도를 설치하든 결정적 불편함이 아니라면 선택의 기준은 ‘보행자 우선’이어야 한다.
보행자 우선이 되기 위해선 차량 운전자들은 불편해야 한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보행자를 먼저 생각하는 교통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사고 이틀 뒤인 지난 19일 오전 사고 현장을 찾아 안전실태를 점검했다.
현장에 나온 주민과 즉석 간담회를 갖고 도로 안전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들은 이 시장은 “시내 교통만은 사람안전·보행자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도로교통시스템을 보행자 중심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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