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학원. 같은 교육현장이라기엔 너무 다른 곳. 두 곳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조우했다. 교사와 강사란 직함을 가진 둘은 서부영화 끝자락에 마주친 숙명의 라이벌 같았다.
15일 오후. 세종과학고에서 윤리와 사상을 가르치는 김진우 씨(51)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종로학원을 찾았다. 26년 간 일반고와 특성화고 등을 두루 거친 김 씨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선 내신과 비교과전형 중심인 수시 비중이 더 커져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를 초대한 이는 학원의 유명강사 정승호 씨(45). 12년 간 대치동과 신촌 등을 오가며 수학을 가르치는 정 씨는 ‘수능 1세대’다. 1994년 대학에 들어간 정 씨는 “부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학교 수행평가를 포함한 내신 성적을 믿을 수 없다”며 정시가 가장 공정한 입시 제도라 믿는다.
동아일보의 정치·사회 성향조사에서 정 씨는 보수에서 38번째, 김 씨는 진보에서 43번째란 결과를 받았다.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입시제도에 대해 가진 생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진우=저는 20년 넘게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수시에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도입된 뒤 동아리와 봉사 등 교내활동이 살아났단 걸 여실히 느껴요. 학교 교육의 질이 높아진 거죠.
▽승호=학종이 처음 도입될 땐 저도 찬성했습니다. 그런데 10년 넘게 학원에 있다보니 다른 현실이 보이더군요. 학종은 결국 돈 많고 좋은 직업을 가진 부모를 둔 학생들이 이기는 제도입니다.
▽진우=저는 단 한 번의 객관식 시험으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게 더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이 배운 게 100이라면 수능으로는 20밖에 측정할 수 없어요.
▽승호=물론 수능이 완벽한 시험은 아니죠. 하지만 수능이 훨씬 공정한 제도인 건 확실합니다. 모두가 똑같은 시험을 보니까요.
▽진우=기계적 공정성에 매몰되지 않아야 해요. 지역과 경제력의 차이, 사교육의 효과는 오히려 정시에서 더 크게 드러나죠.
▽승호=‘효과’라고 하셨죠. 저는 사교육을 해서라도 학생 본인이 효과를 내는 정시가 낫다고 생각합니다. 수시는 효과 따질 것 없이 부모나 학원이 대신 만들어주잖아요.
▽진우=저는 ‘과정’을 강조한 겁니다. 수시가 확대된 후에야 비로소 학교에서 의미 있는 배움의 과정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학부모 등의 개입도 최대한 차단하고 있고요.
▽승호=현실이 어떻습니까? 제가 아는 학부모는 학교에서 스케이트 수업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에게 과외까지 시키더군요. 과외 같은 사교육은 대상을 가리지 않아요.
▽진우=일부 지역, 일부 계층의 문제라고 봅니다. 부작용은 개선해야겠지만 그것 때문에 다시 정시 확대로 돌아가는 건 ‘소탐대실’이에요.
▽승호=또 다른 문제는 수시가 학생들의 ‘빠른 포기’를 조장한다는 겁니다. 내신이 중요한 수시 중심으로 가면 1, 2학년 때 이미 게임이 끝나버려요. 늦게라도 정신 차리고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는 정시의 문이 좁아지면 희망이 없어요.
▽진우=어려운 문제죠. 그래도 저는 수시가 중심이 돼야한다고 생각해요. 정시는 ‘패자부활전’ 역할을 하는 게 맞습니다.
▽승호=정시 비중이 늘어야만 학생들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진우=그렇게 하려면 객관식 중심의 수능 형태부터 바꿔야 합니다. 수능에 논술형 시험을 추가하는 것은 어떨까요. 학교 교육만 받아도 답할 수 있는 수준으로요.
▽승호=그건 동의합니다. 수학도 딱 10문제만 내고 풀이과정을 전부 쓰도록 해 서술형 채점했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비용이 더 들더라도 말이죠.
어디선가 들려온 수업 종소리. 마침 1시간 30분을 쏜살같이 달린 대화도 끝자락에 닿았다. 복도로 나오는 학생들을 보며 나란히 선 두 선생님. 북적거리는 학생들 틈에서 서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매년 연말엔 수능 결과에 아쉬워하며 우는 제자들 때문에 저도 같이 울며 눈이 퉁퉁 부은 채 살아요. 모두가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면 좋겠어요.”(정승호)
“이맘때가 되면 ‘파이팅’이라는 말조차 부담될까봐 망설여져요. 학생들이 흔들리지 않고 자기 속도로 가면 좋겠습니다. 공부든 인생이든 말이죠.”(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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