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시작된 8월 말, 서울도서관 외벽에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마스크를 쓴 채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여성과 수술실에서 누워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누워 있는 환자의 모습이 대비된 모습이었다. 이 현수막은 서울시가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며 경각심을 주기 위해 다소 ‘과격하게’ 만든 포스터였다.
포스터에 반응은 다양했다. “시민들 시선을 사로잡는 감각적인 캠페인”이라는 호평도 있었지만 “서울시가 시민들을 협박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있었다. “100% 외주 작품”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논란을 피하려는 기질이 강한 공무원 조직에서 이같이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채택할 리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구부터 디자인까지 이 포스터는 모두 서울시 시민소통과 소통전략팀원들이 만들었다. 대형 광고사 카피라이터, 디자이너 등 민간 출신 전문직 공무원 7명으로 구성돼 서울시의 ‘외인부대’라고도 불리는 팀이다.
● 자가 격리 중 화상회의 거듭하다 ‘대박’ 건져
서울시는 주요 정책 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소통전략팀을 만들었다. 대형 광고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제작 책임자)를 지낸 유병천 팀장과 카피라이터, 디자이너 등 6명의 팀원이 모였다. 올 초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되면서 이들에겐 코로나 방역 홍보라는 중책이 떨어졌다. 유재명 시민소통담당관은 “서울시가 코로나 상황에 맞게 내놓는 방역대책을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소통전략팀의 새로운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초반에는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 생활 수칙을 안내하는 캠페인을 만들었다. 그러다 8월 말 코로나19 재확산을 기점으로 강력한 방역이 필요했던 서울시는 시민들이 자발적 방역에 나설 수 있게 경각심을 일깨워야 했다. 소통전략팀에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 정책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아이디어 회의를 거듭하던 와중에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 시청 본관 2층에서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팀원 모두 즉시 귀가해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됐다. 하지만 전화위복이었다. 팀원들이 재택근무를 하며 원격 회의를 거듭한 결과 나온 아이디어가 “어느 마스크를 쓰시겠습니까?”였다. 유병천 소통전략팀장은 “코로나 감염 위협을 팀원들이 몸소 체감하며 초조하게 문자를 기다리던 도중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다”며 “워낙 위급한 시국이라 광고 수용자들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대현 주무관은 “따지고 보면 상황이 대박을 만들었다는 아이러니였다”고 말했다.
● 추석·핼러윈 등 코로나 고비마다 히트작 나와
마스크 착용 캠페인 이후에도 소통전략팀은 다시 긴장의 고삐를 조였다. 코로나19는 매번 새로운 위기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추석 명절 대규모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했다. 추석 관련 덕담을 패러디해 이동 자제를 부탁하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집에만 있어라’라는 문구가 탄생했다. 박지연 주무관은 “처음엔 고향 방문 자제로 생각하다 여행을 간다는 사람이 많아 ‘이동자제 부탁’을 포커스로 맞췄다”고 했다. 유 팀장은 “덕담을 활용해 과격한 느낌 없이 추석에 맞는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소통전략팀은 방역대책이 나올 때마다 ‘히트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핼러윈데이에는 ‘핼러윈데이 즐기려다 진짜 유령이 될 수 있습니다’, 천만시민 멈춤 기간에는 ‘코로나가 모든 걸 멈추기 전에 우리가 먼저 멈춰야 합니다’ 등의 문구가 화제가 됐다. 김성은 주무관은 “서울시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어 문구나 이미지를 선택할 때 매우 조심스럽다”며 “홍보물이 너무 강한 탓에 부정적 의견도 있었지만 시국이 위급한 만큼 경각심이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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