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시작 9개월…“부부싸움만 늘어…점심도 겨우 한 테이블”

  • 뉴스1
  • 입력 2020년 12월 8일 09시 36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된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중로의 한 노래방 입구에 집합금지명령서가 붙어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2020.11.24/뉴스1 © News1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된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중로의 한 노래방 입구에 집합금지명령서가 붙어 있다. (기사 내용과 무관)2020.11.24/뉴스1 © News1
“오늘은 점심시간에 손님 한 테이블만 받았어요. 무리하게 창업해선 안 됐었는데…부부싸움만 늘어갑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대유행이 무서운 기세로 확산하고 있는 7일, 서울의 한 프랜차이즈 음식점 내부는 한산했다. 80여평의 대형 매장이지만 점원은 달랑 3명뿐이었다. 3명으로도 서비스는 충분했다. 오히려 일손이 남았다. 이날 점심시간 동안 손님은 한 팀(4인)밖에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매장을 운영하는 고문주(54·가명)씨는 10여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3월 말 창업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피해가지 못했고 영업을 하는 9개월 내내 매달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요즘 남편과의 관계마저 다소 소원해졌다.

‘지인 만류’에도 결정한 희망 갖고 시작한 창업

고씨는 30대 때부터 사무직에 종사해왔다. 결혼과 출산 등으로 중간에 쉰 적도 있었지만 20년 가까이 한 분야에 몸담았다.

그러다 지난해 하반기 고씨는 오랫동안 해온 일을 뒤로 한 채 본인의 사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고민 끝에 요식업 창업을 결정했다.

창업 준비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고씨와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은 ‘쉽사리 요식업 창업에 뛰어 들면 안 된다’며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이미 결심을 한 고씨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고 지난해 10월 모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 계약을 맺었다. 이후 매장을 낼 건물을 알아보다 지난 3월, 서울에서 가게 문을 열었다.

고씨는 창업을 위해 적지 않은 투자를 해야만 했다. 건물 임대와 매장 인테리어 등으로 4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노후 자금을 모두 넣었지만 절반 이상은 은행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당시는 대구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퍼졌지만 수도권에서 느끼는 공포감은 크지 않을 때였다. 고씨는 ‘곧 사그라들겠지’라는 희망 섞인 마음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4억 투자했건만…5월 이태원·8월 사랑제일교회發 악몽에 절망

고씨는 성심성의껏 찾아오는 손님을 대했지만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매장을 연 직후인 5월, 서울 이태원에서 수백명 규모의 집단감염이 터졌고, 이태원과 멀지 않았던 고씨의 매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5월과 6월엔 적자를 면치 못했다.

다행히 시간이 흐르면서 수도권 내 확진자는 조금씩 줄어들었고, 7월부터는 매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손님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고 크지 않은 액수지만 처음으로 흑자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8월 중순 사랑제일교회발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수도권 전역으로 번지면서 매출을 회복한지 한달도 안 돼 곧바로 치명타를 입게 된 것.

확산세는 9월까지 이어졌고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따라 2주간 밤 9시 이후 영업이 중단되며 엎친 데 덮친 꼴이 됐다. 그사이 6명으로 시작했던 직원은 4명이 됐다.

가게의 영업 상황과 관계 없이 임대료, 직원 월급, 음식 재료 비용 등 고정 지출은 속절없이 빠져나갔고 그럴 때마다 고씨는 대출을 받아 급한 불을 껐다. 대출 이자를 갚는 것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고씨 남편의 몫이었다.

◇유지하자니 ‘적자’, 문 닫자니 ‘빚더미’…‘3차 대유행’에 눈물

11월 말 정부는 ‘3차 대유행’을 선언했다. 고씨는 80평짜리 매장에서 직원 4명을 감당하기도 어려워지면서 3명으로 줄였다.

창업한지 9개월이 지난 현재 지금은 부부 간 대화가 사라졌다. 고씨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지쳤고, 아내를 응원하던 고씨의 남편 역시 온몸에 무력감이 퍼져만 갔다.

이들 부부는 최근 웃으면서 대화를 시작하다가도 가게 얘기, 돈 얘기가 나오면 분위기는 다운되고 결국 어느 한쪽의 언성이 높아지며 대화가 마무리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고씨의 매장 근처에서 다른 요식업을 하는 A씨는 “이 부부는 원래 참 밝고 긍정적이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이었는데 최근 근심 걱정에 얼굴이 너무 어두워졌다”며 “요식업을 하는 모든 이들이 다 그렇지만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이들의 사정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1년 전, 창업 여부를 두고 의견을 달리 했던 이 부부는 요즘은 폐업 여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고씨 남편은 1년이 다 되도록 상황에 변화가 없다면 눈물을 머금고 가게를 접자는 생각이다. 끊이지 않는 대출 이자를 계속해서 감당하기 벅찰 뿐더러 가정의 희망에서 애물단지가 된 가게를 바라보고 있기가 힘들어서다.

고씨 역시 남편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폐업을 할 경우 그동안 투자한 돈의 절반도 회수하지 못한 채 몇 억에 달하는 빚만 남게 되는 게 억울하다. 가게를 유지하자니 적자, 문을 닫자니 빚더미를 안게 되는 상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A씨는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 코로나19가 사라지기를 기도하는 거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어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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