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지난달 28일 전북에서 처음 확진된 뒤 열흘 만에 경북, 전남, 경기, 충북 등 5개 지역으로 번지면서 사실상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확산 속도가 빨라 사상 최악의 AI 피해가 발생한 3년 전처럼 ‘계란·닭고기 파동’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열흘 만에 전국적 확산세
8일 AI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전북 정읍시 오리농장, 경북 상주시 산란계 농장, 전남 영암군 오리농장, 경기 여주시 산란계 농장 등 4곳에서 H5N8형 AI가 발생했다. 경기도는 국내 최대 양계 밀집지역이고, 전남은 최대 오리 사육지역이다.
현재 의심 신고가 접수된 충북 음성군 메추리농장과 전남 나주시 오리농장까지 확진 판정을 받으면 전국 5개 지역, 농장 6곳이 감염된 것이다. 이들 농장과 인근 농장에서 키우던 산란계(계란 낳는 닭) 50만 마리, 육계 70만 마리, 오리 35만 마리 등 155만 마리(7일 기준)가 도살 처분됐다.
박병홍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국적으로 바이러스가 농장 주변까지 와있다”며 전국적인 확산세로 판단했다. 9개 광역도 중 충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의 야생조류에서 AI 항원이 검출된 점도 이 같은 판단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발병 농장에 AI 바이러스가 유입된 경로가 여전히 ‘깜깜이’라는 점이다. 중수본은 “해당 농장들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아직까지 농장 간 수평 전파가 발견되지 않는 등 뚜렷한 연관 고리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철새를 통해 유입된 AI 바이러스가 사람이나 차량 등을 통해 각 농장으로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실제로 일부 확진 농장에서 소독이나 방역복 착용 등 기본적인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 3년 만에 ‘계란파동’ 재현 우려
AI 확산 조짐에 계란과 닭고기 수급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국내 가금산물 공급 여력은 충분하다”며 진화에 나섰다. 올해 산란계와 육계 사육마릿수는 평년보다 각각 4.5%, 8% 많다. 육계 냉동 재고량도 41% 증가했다. 오리는 사육마릿수가 평년보다 2.4% 적지만 냉동 재고량이 93.7% 늘었다. 현재까지 계란과 닭고기, 오리고기 가격도 큰 변동이 없다. 박 실장은 “최근 살처분한 산란계, 육계, 오리는 전체 사육마릿수 대비 각각 0.7%, 0.8%, 3.7%에 불과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AI 확산이 장기화하면 2016~2017년처럼 계란과 닭고기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시 닭과 오리 3787만 마리가 도살됐다. 특히 산란계 36%가 처분돼 일부 지역에서 계란 한 판(30개) 가격이 1만 원을 넘는 등 계란값이 폭등했다. 정부가 처음으로 미국산 신선란을 비행기로 공수하기도 했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생닭과 프랜차이즈업체의 치킨 가격도 줄줄이 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집밥 수요가 늘면서 계란은 이미 가격이 오른 상황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특란 10개의 소비자가격(7일 기준)은 1856원으로 지난해 12월 평균 가격보다 4%, 평년 대비로는 0.9% 비싸다. 육계는 사육주기가 30일 안팎으로 짧아 상대적으로 영항이 덜하지만 AI 확산으로 병아리 입식이 지연되면 수급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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