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높다는 뜻의 ‘한라’… 고려말부터 ‘한라산’으로 표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9일 03시 00분


‘인문학으로 본 한라산’ 〈12·끝〉

한라산이 곧 제주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이른 새벽에 만들어진 한라산 그림자가 멀리 바다까지 닿아 있다. 한라산의 어원에 대해 명확한 내용이 없는 가운데 ‘크고 위대하다’는 뜻의 고대 탐라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이 곧 제주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이른 새벽에 만들어진 한라산 그림자가 멀리 바다까지 닿아 있다. 한라산의 어원에 대해 명확한 내용이 없는 가운데 ‘크고 위대하다’는 뜻의 고대 탐라어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의 가치를 논할 때 지금까지는 지형·지질, 동식물, 오름(작은 화산체), 계곡 등 자연자원이 핵심이었다. 이런 자연자원이나 경관에 대한 연구 조사에 비해 인문 분야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동아일보는 한라산이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50주년을 맞아 ‘인문학으로 본 한라산’을 연재했다. 제주 4·3사건을 시작으로 산악인 추모기념물, 고산 방목, 풍수지리, 불교문화, 물의 혁명, 대피소, 한라산을 지키는 사람들 등 한라산이 품고 있는 인문 경관 및 자원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한라산의 어원을 규명해볼 필요가 있다. ‘한라산은 곧 제주도’로 인식되는 걸 고려하면 이는 제주의 정체성과도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옛 문헌 등에서는 한라(漢拏)의 뜻을 ‘손을 뻗어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다(雲漢 可拏引也)’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고대 탐라시대에 높은 곳을 뜻하는 칸(kan)과 땅이나 나라를 뜻하는 나(na)가 합쳐진 ‘칸나’(kanna) 또는 ‘하라’(harra)로 불렸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몽골어로 ‘검은색’ 또는 ‘위대하다’는 뜻의 하라(hara)에서 유래했다는 분석도 있다.

○고려 말 한라산 단어 등장


지금까지 확인된 자료 가운데 ‘한라산’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충렬왕 무렵인 1275∼1308년 제주에 체류한 승려 혜일의 시(詩) ‘서천암’으로 알려졌다. 조선 초기 권근(1352∼1409)은 태조 6년 왕이 내려준 ‘탐라’라는 시제에서 ‘창창일점한라산(蒼蒼一點漢拏山)’이라고 썼다는 기록이 나온다.

1449∼1451년 제작된 고려사에서 ‘진산인 한라산은 탐라현 남쪽에 있다. 한편으로는 두무악(頭無岳) 또는 원산(圓山)이라 한다. 그 산꼭대기에는 큰 못이 있다’고 적혀 있다.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진산 한라산은 주의 남쪽에 있으며 일명 두무악, 또는 원산이라 부른다. 관에서 제를 행한다. 산이 궁륭하고 높고 거대하며 그 꼭대기에 큰 연못이 있다’고 기록했다.

1530년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8권 제주목 기록는 ‘한라산이 마치 은하수를 가히 끌어 당길 만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있게 됐다’고 나온다. 이 같은 내용은 후에 나오는 한라산 유산기(遊山記) 등의 기록에 그대로 인용된다. 고지도 가운데 1402년에 제작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서도 한라산 명칭이 보이는데 1455년에서 1499년 사이 모사(模寫)를 할 때 한라산이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후 조선시대 고지도에는 대부분 한라산으로 명기했다.

한라산은 과거에 하로산, 할로영산, 할락산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오랜 기간 제주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무속신앙에서도 한라산 명칭에 대한 원류를 찾을 수 있다. 한라산에서 출생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자리 잡은 당신(堂神) 이름에서 ‘하로영산 백관또’ ‘올래모루 하로산’ ‘중문 하로산’ ‘동백자 하로산’ ‘남판돌판고나무상태자 하로산’ 등의 하로산은 바로 한라산을 일컫는다.

○지명표기 오류 많아 조사와 연구 필요


그렇다면 하로, 할로는 무슨 뜻일까. 한라산의 어원을 규명하는 결정적인 단어이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해석은 없다.

김공칠 전 제주대 교수는 ‘탐라어연구’라는 책에서 한라산의 호칭은 높은 산(山)이나 구름을 뜻하는 칸나(kan-na)에서 유래했다고 해석했다. 이후 k가 h로 변음 과정을 거쳤으며 큰 산, 하늘의 산, 하나의 산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풀이했다. 그는 고대 탐라어가 알타이, 아이누 등 북방계열 뿐 아니라 일본 대만 등 남방계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으며 지금 사용하는 ‘한라’는 한자를 차용해서 썼다고 주장했다.

제주한라대에서 교환교수를 지낸 중국인 류쥔궈(劉均國) 씨는 2015년 제주학회 제42차 학술대회에서 몽골어 기원설을 제시했다. 그는 “몽골어로 검은색은 하라(또는 하르)로 표기하는데 한라(halla)와 쓰기 및 발음에서 유사성이 깊다”고 주장했다.

원(元) 국호 사용 이전 몽골제국 초기 수도 이름인 합랍화림(哈拉和林·kharakorum)은 검은색 도시라는 뜻이고 ‘크고 위엄이 있는 도시’로 해석되기도 한다. 현지 발음으로는 ‘하라호름’ ‘카라코룸’ 등으로 불리는데 하라 또는 카라는 한라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현재 몽골지역에서 ‘알락 할르한산’ ‘하르히라산’ 등 한라산과 유사한 산 명칭이 있다.

몽골은 1273년 고려와 연합해 항몽세력인 삼별초를 평정한 것을 계기로 제주를 직할령으로 삼아 몽골제국 14개 국립목장의 하나로 탐라목장을 운영했다. 1374년 고려 최영 장군에 의해 목호(牧胡·소와 말을 사육한 몽골인)들이 토벌될 때까지 100여 년간 직간접적으로 제주 사회 곳곳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자료를 종합해보면 한라산은 탐라시대부터 크고 높은 산을 뜻하는 카라(하라), 하로, 할로 등으로 불렸으며, 고려 말에 한자를 차용해 ‘한라산’으로 표기하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에 ‘손을 뻗어 은하수를 잡을 수 있다’는 해석을 부여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한라산에 대한 다른 별칭으로 알려진 두무악(頭無岳)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한자의 뜻 그대로 해석해서 ‘머리가 없는 오름 또는 산’이라는 것인데, ‘두믜오롬’(무두오롬)의 한자 차용 표기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오창명 제주국제대 교수는 “두무악은 둥근 오름이나 산을 뜻하는 한자가 아니라 가마솥을 뜻하는 ‘드므’의 한자 차용표기로 조선 성종실록에는 전라도나 경상도에서 제주 출신의 사람을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했다”며 “제주지역 지명 표기나 해석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사전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한라산#고려말#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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