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진실규명 신청서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 모임에서 제출해주셨습니다.”(정근식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부산의) 형제복지원 진실규명이 이루어진 적이 없어서 부득이하게 전국에서 신청서를 받았습니다. 힘없는 서민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 모임 대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 2기가 10일 공식 발족했다. 과거사위는 오전 9시부터 진실규명 신청서를 접수했다. 오전 9시가 되기도 전에 신청인들은 건물 1층에서 순번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신청인들은 순서대로 조를 나눠 접수처로 이동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모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경주유족회, 베트남전국군포로·납북자가족회 순으로 신청서를 제출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신청인인 형제복지원 피해자 모임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경주유족회의 신청서는 정 위원장이 직접 접수했다. 신청인들은 진실규명을 당부했고 정 위원장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모임 대표는 광주광역시에서 올라와 이날 오전 4시30분까지 피해자 총 170명의 신청서를 대신 모으고 서류를 정리했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오전 7시30분에 과거사위 건물에 도착해 1번 순번표를 뽑았다. 과거사위 직원들도 오전 7시까지 출근해 긴장한 모습으로 신청인들을 맞았다.
한 대표는 9세던 1984년부터 3년6개월 동안 부산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됐다. 형제복지원은 부랑인 선도 명분으로 1975~1987년 정부가 운영하던 시설로 장애인, 고아 등 3000여명을 잡아들여 강제노역과 학대를 일삼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당시 ‘국가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공부도 가르쳐주는 훌륭한 시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공무원과 경찰로부터 들은 아버지가 한 대표와 그의 누나를 파출소에 맡겼고 둘은 형제복지원으로 옮겨졌다. 당시 한 대표의 아버지는 구두를 닦으면서 생계를 유지했으며 월세조차 내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한 대표는 “이후 아버지도 형제복지원에 끌려왔는데, 지금 누나와 아버지는 당시의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해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2년의 신청 기간이 있음에도 피해자 170명이 신청서를 낸 까닭은 하루빨리 진실규명을 하고 자신이 아니라 국가의 잘못이었음을 인정받고 사과받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9시40분부터 정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할 수 있도록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저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무를 어떻게 감당할까, 어깨가 무겁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기 진실화해위가 2010년까지 4년여간 업무를 했고 그 성과로 우리 사회의 어려운 문제들이 상당수 밝혀졌다”면서도 “당시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도 있지만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감수성이 높아졌고 여야 합의로 법률이 개정돼 2기 진실화해위가 출범했다”고 전했다.
이어 “유족이나 피해자들의 아픈 마음을 다시 어루만져드리고 말 그대로 화해와 평화로 나아갈 기회를 열게 돼서 대단히 귀하다”라며 “과거사위가 과거의 문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는 국가기구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날부터 과거사위는 서울 중구 사무실뿐만 아니라 전국 17개 시도와 243개 시군구에서도 우편 및 방문을 통해 진실규명 신청을 받는다. 연로해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서면이 아닌 구술로도 진실규명을 신청할 수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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