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백신 도입전략 ‘첫 단추’부터 잘못 뀄나…“집단면역 비상”

  • 뉴스1
  • 입력 2020년 12월 18일 06시 21분


수개월간 코로나19 확산세를 억누르며 전세계 찬사를 받아온 ‘K-방역’이 유독 코로나19 ‘백신’ 구매와 관련해서는 논란이 크다. 돌 다리를 두드려 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우리보다 방역 성적이 낮다고 판단되는 미국, 유럽, 일본 등보다 백신 접종 속도가 수개월씩 늦어지고 있어서다.

영국과 미국 등은 이 달 예방접종을 시작했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뒤늦게 백신 구매 소식을 알렸다. 내년 2~3월 백신 도입 계획만 그나마 구체적으로 세워졌을 뿐, 접종 시점은 ‘가능한 빨리’로 사실상 미정이다. 코로나19 유행을 억제할 수 있는 ‘잡단면역’을 일으키기 위한 국민 60% 접종 완료시점을 추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에 따라 최근 감염 확산세가 더욱 매섭게 느껴지고 있는 상황이다.

18일 일본 보건당국 한 관계자는 <뉴스1>과 만나 “일본은 이미 전체 국민의 약 1.5배에 달하는 백신 물량에 대해 도입 계약을 맺었거나, 확보를 해놓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국보다 먼저 백신을 확보한 배경에 대해 그는 “미국과 유럽 등이 계약 행보를 보이면서 일본도 동시에 나선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일본이 확보한 물량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화이자·모더나·아스트라제네카 등의 백신이다. 하지만 일본은 올 하반기 시작부터 협상을 벌여 이미 물량 확보를 해놨고, 곧 접종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목표로 한 전국민 접종 완료 시점은 내년 상반기다.

◇국내 백신 접종, 미국·유럽·일본보다 3~4개월 늦을 듯

일본 외에도 많은 국가들이 발 빠르게 많은 양의 백신을 선구매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기윤 의원이 입수한 보건복지부 ‘해외국가별 백신 확보 동향’ 문건에 따르면, 미국은 백신을 24억회분, EU 11억회분, 영국 3억8000만회분, 캐나다 1억9000만회분, 일본 5억3000만회분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백신이 2회 접종을 하는 만큼 여기서 각각 반으로 줄여도 자국 인구수를 넘어서는 물량이다.

이 중 영국과 미국은 이미 접종을 시작했다. 한국은 빠르면 내년 3월 이전 접종 시작을 목표로 한다. 계획한 4400만명 접종완료 시점은 내년 하반기다. 결국 다른 나라들보다 마스크 방역을 3개월 이상 더 해야 하는 셈이다.

이마저도 백신 구매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될 때 가능하다.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선구매 계약을 확정한 것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명분뿐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를 통한 국내 생산 계획까지 잡혀 있어 가장 구체적이다. 비임상자료를 통한 허가 심사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다만 아스트라제네카가 최종 허가를 위해 임상3상 결과를 언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할지가 관건이다. 일단 내년 1월쯤으로 예상되고 있지만 임상3상 자료 제출 시기가 늦어질 수록 접종 시점이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어 정부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화이자 백신 1000만명분과 얀센 백신 400만명분은 곧 선구매 계약이 이뤄질 전망으로, 아직 식약처에 허가 심사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단 아스트라제네카보단 늦은 상황이다. 모더나 백신 1000만명분은 내년 1월쯤이 돼야 최종 계약이 이뤄질 전망이 나온다.

◇비용·임상 부작용 깊이 따지다가…늦은 계약, 골든타임은 빨라져

우리나라가 도입할 해외 백신은 상당 수가 아직 임상3상 최종 결과가 제출되지 않아, 그 결과에 대한 불완전성이 남아있다. 아울러 해외서 물량이 부족하다는 소식이 잇따르고 있어, 계약된 수량이 제때 들어올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

정부가 기존 3000만명분에서 4400만명분으로 도입 백신 물량을 늘렸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백신들 중 일부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집단면역’이 어려워질 수 있다. 최소 백신 2종 이상이 못 들어오면 국민 60% 이상 접종을 위해 다시 대규모 물량 도입 계약을 해야 하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8일 백신 구매 관련 브리핑에서 “우리나라는 백신 성공이 가시권에 있는 상태에서 계약을 맺어 굳이 인구 2배 내지 5배를 규모로 선구매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실익을 꼼꼼히 따지며 백신 구매에 나서다 보니, 도입시기와 물량확보를 모두 놓쳤던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한 관계자는 “공격적으로 백신을 구매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검토로 구매 계약이 늦어지고, 비용 문제도 깊게 고민하다 보니 다른 국가 대비 적은 물량을 구매했던 것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지난 8일 브리핑을 통해 “(구매 계약을) 빠르게 했다면 7월에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안전하고 유효성이 있는 백신을 선택하기 위해 제조사에 임상자료를 요구했고, 이를 검토하며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코로나19 유행 확산세가 매우 커지면서 정부의 백신 구매 ‘신중론’이 더욱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된 상황이다. 특히 중환자 급증으로 의료체계 ‘골든 타임’이 더 빨리 다가오고 있어 이 같은 시각이 더욱 커진다.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의 이 같은 신중론은 앞서 독감백신 사태로 인한 부작용 민감도가 매우 높아진 영향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코로나19에 대한 아무런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추후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하더라도 백신 확보 경쟁에 우선 뛰어들었어야 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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