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폐업→또 창업… 고생길 뻔해도 대안 없는 ‘사장님’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2일 03시 00분


[‘코로나 혹한’ 자영업의 눈물] <2> 출구 없는 자영업자

18일
 서울 강북구의 주방용품 중고매장에서 김현중 씨(51)가 집기를 둘러보고 있다. 김 씨는 10년 넘게 운영했던 고깃집을 8월 초 
접은 뒤 이곳에 중고물품을 넘겼다. 폐업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내년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다시 식당을 차릴 생각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18일 서울 강북구의 주방용품 중고매장에서 김현중 씨(51)가 집기를 둘러보고 있다. 김 씨는 10년 넘게 운영했던 고깃집을 8월 초 접은 뒤 이곳에 중고물품을 넘겼다. 폐업 과정에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내년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다시 식당을 차릴 생각이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김현중 씨(51)는 7월의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점심 장사를 아내에게 맡긴 뒤 오후 5시쯤 출근해 가게를 지켰지만 밤 12시가 다 되도록 찾아오는 손님이 없었다. 새벽 2시 가게 문을 닫을 때까지 김 씨는 준비한 고기를 1인분도 팔지 못했다. 하루 종일 가게를 드나든 건 김 씨 부부와 직원 4명뿐. 10년 넘게 장사하면서 이런 날은 처음이었다.

새벽 퇴근길,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날로 김 씨는 고깃집을 접기로 결심했다. 동네 맛집으로 소문나 2호점까지 냈던 식당이었다. “손님 없는 식당에서 직원들에게 수고했다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그게 사람을 얼마나 힘들게 하던지….” 며칠 뒤 그는 ‘사장님’에서 ‘무직자’가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는 힘겹게 버텨온 자영업자들을 ‘폐업 절벽’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다른 길을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그들 앞에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폐업을 택한 자영업자 상당수는 또다시 재창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 ‘코로나 삼중고’에 고깃집 접었지만


13년 전 처음 서울 강북구에서 고깃집을 시작한 김 씨는 장사가 잘되자 근처에 2호점을 냈다. 이 중 한 곳을 지난해 먼저 닫았다. “2년 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음주운전 처벌법도 강화되면서 회식이 많이 줄었어요. 큰 고깃집은 회식 예약으로 먹고사는데 타격이 컸죠.”

올 들어 코로나19는 김 씨에게 치명상을 안겼다. 가뜩이나 줄어든 매출은 올봄 다시 절반으로 곤두박질쳤다. 손님은 줄어도 임차료, 인건비 같은 고정비는 그대로였다. 코로나19로 미국 육가공 공장이 문을 닫자 식당에서 쓰는 미국산 쇠고기 가격도 1.5배로 뛰었다. 그야말로 삼중고였다. 안 하던 점심 장사까지 시작하며 버텼지만 백기를 들고 말았다.


김 씨는 “그나마 남들이 머뭇거릴 때 빨리 잘 털고 나온 편”이라고 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오후 9시 이후 음식점 영업이 제한돼 주변 식당들의 피해는 더 쌓이고 있다. 일찍 폐업한 덕에 권리금도 별로 깎이지 않았다.

폐업을 결심한 날을 잊지 못하는 김 씨지만 코로나19가 진정되면 다시 식당을 차릴 생각이다. 그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그나마 음식업이 진입 장벽이 제일 낮다”고 했다. 배달 서비스를 강화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 중에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다른 할 일은 없고 굶어 죽을 수도 없으니까 다들 빚내서 하는 거지.”

김 씨의 하소연은 취업자 5명 중 1명이 자영업자인 한국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11월 현재 국내 자영업자는 552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20%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자영업 비율 15.5%(2018년)를 크게 웃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괜찮은 제조업 일자리는 계속 줄고, 고부가가치 서비스업도 기업화되지 않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생계형 자영업으로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 알면서도 못 피하는 창업-폐업-재창업 도돌이표

15년 넘게 PC방을 운영했던 박모 씨(46·여)도 10월 마지막 PC방을 폐업했지만 취업할 생각이 없다. 그는 “나도 아르바이트생을 안 뽑았는데 일자리 찾기가 쉽겠느냐”며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건 마트 계산원 정도”라고 했다.


가난한 연극배우였던 박 씨는 지인의 동업 제안을 받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처음 PC방 사업에 뛰어들었다. 6개월 만에 동업을 그만둔 뒤엔 오빠의 도움을 받아 혼자 PC방을 차렸다. 12년간 운영했던 두 번째 PC방은 상가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접어야 했다. 치킨집을 차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의 선택은 또 PC방이었다.

새로운 업종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 마침 새로운 게임이 유행해 파리 날렸던 PC방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서울 송파구에 세 번째 PC방을 차린 뒤 근처에 매장을 하나 더 낼 만큼 장사가 잘됐다. 하지만 PC방 인기가 다시 시들해지면서 올해 3월 매장 1곳을 먼저 정리했다.

올여름 코로나19로 PC방이 영업정지를 당하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아르바이트생을 6명이나 내보냈지만 매달 1500만 원씩 적자가 쌓였고 빚은 1억 원으로 불었다. “더 버틸 힘이 없다”고 느낀 그는 결국 마지막 PC방을 정리했다.

자영업자를 비롯해 지난해 폐업한 개인사업자는 85만2572명.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2년 이후 가장 많다. 수년째 계속된 경기 침체에 2016년 이후 매년 80만 명 이상이 폐업하고 있다. 하지만 폐업한 자영업자 상당수는 다시 ‘사장님’이 된다. 중소기업중앙회가 폐업한 자영업자 50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43.1%가 다시 창업했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28.3%는 같은 업종으로 창업했다.

○ 위기 때마다 준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영업자들


코로나19로 자영업 경기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지만 새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노후 준비 없이 은퇴하는 베이비부머들에게 자영업 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신규 개인사업자는 117만8769명으로, 역대 최대였던 2018년(124만2756명)과 비슷했다.

하지만 무작정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해 11월 호프집을 차렸다가 9월 폐업한 장모 씨(34·여)는 “상권 분석도 하지 않고 저렴한 임대료와 인테리어만 생각하고 일을 벌인 게 잘못”이었다고 했다. 식당 창업과 폐업을 4차례 반복한 김모 씨(30)도 “음식점은 별다른 전문성 없이도 열 수 있으니 쉽게 덤볐다”며 “‘가게 열면 손님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열었다가 망하고, 또 열었다가 망했다”고 했다.

통계청의 8월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 10명 중 9명(86.2%)은 준비 기간이 1년도 채 안 됐다. 3개월도 준비하지 않고 창업한 사람도 절반(52.6%)을 넘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외환위기 등 경제위기를 겪고 난 뒤 자영업자가 증가했던 것처럼 코로나19 사태 역시 이 같은 자영업의 구조적 문제를 더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특별취재팀

▽ 팀장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 주애진 구특교(이상 경제부) 조응형 김소영 박종민 김태언(이상 사회부) 기자


#코로나19#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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