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환 교수의 新국부론]<6>수도권 맞설 동남권 플랫폼 시티 구축, 헌법정신 구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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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5000여명이 구성원인 부산대는 국가를 축소한 조직과 같다. 사회에서 필요한 전 분야의 사람들을 길러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다.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자처하는 교수들은 자기 생각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대학의 총장은 교육자이면서 행정가와 경영자이고, 조정자와 협상가이어서 정치적 수완도 발휘해야 한다. 또한 총장은 대학과 사회의 미래비전을 제시하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 대학이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을 직시하면 미래가 보인다.

현재의 인구 통계는 향후 수십 년의 미래사회 예측 가능

2016년 부산대 총장 취임 인사차 서울 소재 언론과 방송사를 방문했다. 담당 임원들에게 출산율 감소로 인해 향후 20년 내 지역대학 대부분이 사라진다고 역설했다. 그 이후 중앙언론들은 인구절벽으로 야기되는 사회문제와 지역대학 위기에 대해 심층 보도를 했다. 2015년 당시 우리나라 출생자 수는 43만8000여 명, 합계출산율은 1.24였다. 4년 후 2019년에는 무려 30%가 감소한 30만3000여 명이 태어났고 합계출산율은 0.92로 뚝 떨어졌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10% 이상 떨어져 27만여 명이 태어나고 합계출산율은 0.8로 떨어진다고 한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현상이다. 이 데이터를 보면 향후 20년 내 지방 시군의 40%가 소멸될 것이 분명하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지방대학은 모두 사라질 수 있다. 2019년 말 기준 수도권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50%를 초과했다. 이는 대한민국이 '서울도시국가(서울공화국)'로 가고 있는 조짐이다.

블랙홀 같은 수도권 집중의 힘, 모든 것 빨아들여


작년 2월 SK하이닉스는 경기 용인에 120조 원 규모의 반도체클러스터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전자산업의 중심지인 경북 구미의 구애를 뿌리쳤다. 고급인력을 구할 수 있는 곳이 구미보다 유리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도체산업은 첨단기술연구도 필요하지만 분명 제조업이다. 제조업이 수도권에 진입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묵시적으로 용인된 국내 지역 간 분업 모델이 깨졌기 때문이다. 규모의 경제론은 집중을 불러 결국에는 블랙홀이 될 위험이 있다. 집중의 장점을 주창하는 경제학자나 도시학자도 있다. 미국 시애틀의 성장 과정이 그 예이다. 신생기업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1979년 이 도시로 본사를 옮겼다. 그랬더니 훗날 세계 최대 상거래 업체로 성장하는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시애틀에서 창업을 하면서 혁신기업들이 줄줄이 몰려왔다. 시애틀은 ‘임계질량’을 넘기면서 혁신역량이 도시의 성장보다 더 빠르게 커갔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플랫폼 효과다. 서울 역시 같은 효과를 누리면서 지방에 있어야 할 제조업까지 집어삼키고 있다.

서울의 글로벌 경쟁력 향상과 국가의 지속성


한국은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다. 따라서 인구와 자원을 서울에 집중시켜 경쟁력을 키워야만 국가의 글로벌 경쟁력도 향상된다는 주장이 먹혀 왔다. 2019년 기준 상장사의 72%, 시가총액 85%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상위 20개 대학 중 18개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수도권 일극 집중 현상이다. 반면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전쟁 중의 평균 출산율보다 낮다. 금년 2분기 합계출산율은 0.64명이었다. 수도권의 인구는 순전히 지방으로부터의 유입으로 유지된다. 2010∼2014년 5년간 연평균 80조 원의 소득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흘러들어 갔다. 서울이 지방을 먹여 살린 것이 아니라 지방이 서울을 먹여 살린 꼴이다. ‘지방 소멸’의 저자 마스다 히로야는 지방 소멸로 수도권의 인구 유입이 끊겨 결국 수도권도 같이 무너진다고 갈파했다. 그래서 수도권에 맞서는 플랫폼 효과를 내는 창조적 지방 거점도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많다. 미국에는 시애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스턴, 시카코, 샌프란시스코 등 플랫폼 도시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

동남권 메가시티 플랫폼 구축, 헌법이 명한 지역균형발전의 시작


울산 부산 창원 거제 등을 잇는 동남권임해공업벨트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조선, 자동차, 기계, 석유화학, 가전, 플랜트 분야의 세계 1등 기업들이 그 주역이었다. 그러나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이 지역 광공업생산 감소율은 전국 평균의 2배 이상이다. 청년 실업자 수가 울산, 부산, 경남 순으로 전국 꼴찌다. 젊은이들은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세계 1등 기업의 축적된 자산을 가지고 있는 동남권은 840만 명이 살고 있는 메가시티다. 세계 5위의 항만시설을 갖춘 부산은 그 핵이다. 이러한 여건을 가졌음에도 플랫폼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세계 도시와 빠르게 연결되는 국제공항이 없기 때문이다. 가덕신공항이 고추 말리는 공항이 된다고 수도권 집중론자들은 비아냥거린다. 선거용이고 정치적이라고 주장한다. 김해공항은 주변 소음 피해로 인해 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 7시간 문을 닫는다. 24시간 작동하는 국제공항으로서 큰 결격 사유다. 군사공항으로 문을 연 김해공항은 산으로 둘러싸여 비행기의 이착륙이 위험하다. 그래서 2002년 중국 민항기가 착륙하다 산에 부딪쳐 탑승객 전원인 129명이 목숨을 잃었다. 도시와 비즈니스의 경쟁력은 속도다. 인천공항을 거쳐 부산까지 오는 데 한나절이 걸린다. 기업의 본사가 수도권으로 몰려가는 또 하나의 이유다. 동남권 관문공항은 부울경 메가시티가 ‘임계질량’을 넘겨 플랫폼 효과를 내게 할 수 있는 핵심 서포터이다. 국세의 낭비가 아니라 국가의 지속성을 위한 투자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지역의 균형발전을 통해 각 개인에게 균등한 삶을 제공하는 것’을 실현하는 바른 정치행위다. 함께 살고 멀리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정치(正治)이고 교육의 본질이다.

전호환 부산대 교수·전 부산대 총장, 동남권발전협의회 상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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