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비위”라던 재판부 문건… 법원선 “징계사유 더 따져봐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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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징계 불발]법무부 주장 상당부분에 “소명 안돼”
퇴임후 봉사 발언이 정치중립 위반?
법원 “제시 자료론 징계사유 안돼”
文대통령 ‘절차적 정당성’ 강조, “징계위 위법”으로 무색해져


“윤석열 검찰총장의 여러 비위 혐의에 관해 직접 감찰을 진행한 결과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확인했다.”(지난달 2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기자회견)

“재판부 분석 문건, 채널A 사건 감찰 방해 등은 징계 사유로 인정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24일 서울행정법원 결정문)

추 장관이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면서 공개한 징계 사유를 법원은 한 달 뒤 상당 부분 소명되지 않아 징계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에선 추 장관이 구체적이고 치밀한 징계 근거 없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무리하게 추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 “재판부 문건 부적절… ‘정치적 중립 의심’ 추측”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홍순욱)는 24일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결정문을 통해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윤 총장에게 적용한 4가지 징계 사유의 인정 여부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한 가지 사유는 ‘어느 정도 소명’, 두 가지 사유에 대해선 징계 사유로 부족하다고 봤다. 나머지 한 가지는 구체적인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추 장관이 지난달 24일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겠다며 밝힌 6가지 징계 사유 중 명시적으로 징계 사유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은 1가지뿐이다. 앞서 징계위에서도 추 장관의 6가지 징계 사유를 8가지로 늘린 후에 절반인 4개는 무혐의 또는 불문으로 결론 내렸다.

우선 법원은 이른바 ‘재판부 분석 문건’에 대해 “재판부 판사들의 출신, 주요 판결, 세평, 특이사항 등을 정리해 문건화하는 것은 해당 문건이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면서 “매우 부적절하고, 차후 이와 같은 종류의 문건이 작성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법무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를 활용해 재판부를 공격, 비방, 조롱할 목적이라든가 반복적으로 작성됐다는 사실은 소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징계 사유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작성 방법과 경위에 대하여 본안소송에서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유보했다.

재판부는 윤 총장이 올 10월 국정감사에서 “퇴임하고 나면 국민들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퇴임하고 나서 천천히 생각하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 법무부가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으로 징계 사유로 삼은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법무부의 소명자료만으로는 이 부분 징계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윤 총장 측이 제기한 “검찰총장 정직으로 인한 검찰 조직, 나아가 법치주의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윤 총장도 과거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처리하며 소신 있게 수사했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피력하기도 했다”면서 “국민은 검찰총장 직무를 대행하는 대검 차장검사나 일선 검사들이 검찰총장이나 정치권의 편이 아닌 국민의 편에서 그 직무를 수행할 것을 신뢰하고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윤 총장의 부재로 검찰 조직에 손해를 미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지만 윤 총장 개인에게 미치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커 집행정지를 인용한다고 설명했다.

○ 文 “절차적 정당성 담보”… 법원 “징계 의결 무효”


재판부는 윤 총장의 징계 사유에 대한 판단 여부를 떠나 징계위의 ‘정직 2개월’ 징계 의결 절차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0일 1차 징계위와 15일 2차 징계위 당시 윤 총장 측이 기피 신청을 한 징계위원들에 대한 기피 의결 절차가 무효라고 봤다. 검사징계법에는 “재적 위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기피 여부를 의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징계위 당시 기피 의결에 참석한 수는 징계위 재적 인원 7명의 과반수(4명)에 못 미치는 3명이었다. 기피 의결이 의사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효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윤 총장의 징계에 대해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징계위원회는 더더욱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이 법무부에 무엇보다 절차적 흠결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음에도 정작 절차의 위법성으로 인해 징계 의결 자체가 무효화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유원모 onemore@donga.com·고도예 기자
#윤석열 징계 불발#재판부 문건#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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