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구치소 첫 코로나 사망자 정체? ‘밑바닥 성공가’→3000억대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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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2월 29일 15시 37분


굿모닝시티 분양 사업을 하며 횡령·배임 범죄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2003년 구속된 윤창열 씨. 동아일보 DB
굿모닝시티 분양 사업을 하며 횡령·배임 범죄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2003년 구속된 윤창열 씨. 동아일보 DB
3000억 원대 굿모닝시티 사기사건으로 구속수감중이던 윤창열 씨(66)가 감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사망했다.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수감자 가운데 코로나19로 숨진 첫 환자다. 동부구치소에 수감됐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24일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사흘 뒤인 27일 새벽 숨진 것으로 확인된 윤 씨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의 주인공이었다. 윤 씨는 당뇨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눈 내리는 동부구치소 ‘살려주세요’ 자필 종이. 뉴시스
눈 내리는 동부구치소 ‘살려주세요’ 자필 종이. 뉴시스

굿모닝시티 분양 사업을 하며 횡령·배임 범죄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2003년 구속된 윤창열 씨. 동아일보 DB
굿모닝시티 분양 사업을 하며 횡령·배임 범죄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2003년 구속된 윤창열 씨. 동아일보 DB
윤 씨는 2003년 초 1980년대 국내 건설업계의 대표 주자였던 ㈜한양을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관련업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한양은 1980년대 중반 이후 해외 건설 침체와 함께 몰락하면서 산업합리화 업체로 지정된 뒤 1993년 법정관리에 처해졌다가 1994년 10월 대한주택공사(현재 LH)에 인수됐다. 주공도 한양 정상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하면서 한양에 대한 파산 절차를 밟다가 당시로선 신생 부동산 개발업체였던 굿모닝시티에 매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모든 사업계획이 서울 중구 을지로 6가 일대 4300㎡(약 1300평) 부지에 첨단 시설을 갖춘 대형 패션 테마상가인 '굿모닝시티' 성공이 전제였다. 당시 동대문 패션 상권은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도·소매 유통의 핵심거점으로 입지를 굳히던 때였다.

2003년 10월 13일 굿모닝시티 분양사기관련 윤창열회장의 6차공판이 열린 서초동 검찰청사앞에 사기 피해자들이 부패없는 사회 구현 촉구 대회를 열고 있다. 동아일보 DB
2003년 10월 13일 굿모닝시티 분양사기관련 윤창열회장의 6차공판이 열린 서초동 검찰청사앞에 사기 피해자들이 부패없는 사회 구현 촉구 대회를 열고 있다. 동아일보 DB
그런데 굿모닝시티 건설은 계획대로 추진되지 못했고, 섣부른 분양은 분양사기로 이어졌다. 4000여 명에게 상가를 투자액만큼 지분을 인정해 파는 방식으로 분양했고, 5000억 원에 가까운 분양자금을 확보한 뒤 이중 3700억 원을 횡령한 혐의였다. 당시 윤 씨는 2002년 굿모닝시티 건축허가와 관련된 청탁과 함께 정대철 전 열린우리당 고문에게 4억 원의 뇌물을 제공한 혐의도 받았다. 정 전 고문은 윤 씨에게서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2005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이 확정됐다.

굿모닝시티 분양사기 피해자로 구성된 굿모닝시티계약자협의회 회원들이 2004년 7월 6일 상가 건축현장인 옛 계림빌딩에서 법정관리 정상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있다. 이 협의회는 검사장 출신 유력인사가 윤창열회장으로부터 수사무마 청탁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DB
굿모닝시티 분양사기 피해자로 구성된 굿모닝시티계약자협의회 회원들이 2004년 7월 6일 상가 건축현장인 옛 계림빌딩에서 법정관리 정상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있다. 이 협의회는 검사장 출신 유력인사가 윤창열회장으로부터 수사무마 청탁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DB
당시 특수2부장을 맡아 굿모닝시티 수사를 지휘했던 검찰 간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혼외자 논란으로 중도 사퇴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었다. 또 자산규모 2600억 원의 규모의 한양을 인수하는 과정에 정·관계 로비를 통행 헐값에 회사를 인수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윤 씨는 이로 인해 징역 10년을 선고받아 만기 출소했다. 이후 윤 씨는 출소한 뒤에도 지인들에게서 약 16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사기사건의 장본인이 되기 전까지 그는 배고픔을 잊기 위해 13세라는 어린나이에 목수일을 시작해 대형 부동산개발업체 회장으로 ‘변신’한 인물로 재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29세 늦깎이로 연세대 중문과에 합격했다. 생전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그는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180명 가운데 3등을 했다. 그런데 등록금이 없었다. (그래서) 전북 익산에서 무작정 상경했다. 그때 목공일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악착같이 일하면서 돈을 모든 뒤 16세 때 직접 목공소를 차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남의 밑에서 일하기를 13년. 어느 정도 모은 돈으로 독서실, 하천 복개공사를 하는 개발 회사 등을 차렸지만 하는 사업마다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삶이 힘들어 3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는 등 시련이 끊이질 않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시련이 그를 강철보다 더 단단한 인간으로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사는 것도 어려운데 죽는 것은 더 힘들었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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