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공수처장 지명자 그 뒷면엔 ‘럭비공’ 기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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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2월 30일 14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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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 출범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검찰과 경찰의 고위공직자 수사를 언제든 넘겨받을 수 있어 사실상 검경의 상위기관이라는 평가를 받는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공수처장은 직급으로는 차관급이지만 장관급인 검찰총장보다 사실상 권한이 더 크고 임기도 3년으로 총장보다 1년이 더 길다. 무소불위의 수사 권력으로 비판받기도 하는 막강한 자리인데, 막상 초대 공수처장에는 법조계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인물이 최종 지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초대 공수처장으로 지명한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54)은 판사 출신의 법조인이다. 1966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 보성고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5년 판사로 임관해 서울지법 북부지원(현 서울북부지법)과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에서 3년간 일하다 김앤장법률사무소로 옮기면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한변협 사무차장을 거쳐 2010년부터 현재까지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과 헌법재판소장 비서실장 등으로 일하며 헌법재판 보좌 업무를 오랫동안 해왔다.

김 후보자는 엘리트 판사와 검사들이 거치는 주류 법조계와는 거리가 있는 평범한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초대 공수처장이 지닌 높은 상징성과 자리의 비중에 적합한 인사인지에 대해 벌써부터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고위공직자 수사를 전담하는 공수처장에게는 큰 수사를 지휘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데, 김 후보자는 판사와 변호사, 헌재 연구관으로 일해온 터라 수사를 해본 경험 자체가 거의 없다. 변호사 시절이던 1999년 우리나라 최초의 특별검사인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검팀’에 특별수사관으로 참여해 2개월간 수사한 것이 유일하다. 김 후보자가 대형 권력형 비리 수사를 일사분란하게 지휘하는 데 필요한 수사 경험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또 변호사와 헌법 재판 보좌 업무를 주로 해온 탓에 공수처 조직을 이끌어갈 수 있는 조직관리 경혐과 능력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도 추가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 이전까지 법조계에서 무명에 가까울 정도로 인지도가 거의 없었던 김 후보자를 초대 공수처장으로 지명한 것을 두고 청와대가 무난한 공수처장을 통해 향후 정권 관련 수사를 좌지우지하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한 전직 고검장은 "청와대 말을 잘 듣는 공수처장 밑에 수사를 잘 아는 공수처 차장을 임명해 민감한 권력 수사를 통제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합리적이고 조용한 성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 후보자의 성향 중에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이른바 ‘럭비공’ 같은 기질도 있다는 얘기도 있다. 공수처 출범 이후 그가 현 정권과 부딪히는 수사를 하게 될 경우 고분고분하게만 처신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는 지명 직후 "공수처 출범에 대한 여러분들의 기대, 그리고 걱정을 잘 알고 있다"며 "부족한 사람이지만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 검증인 인사청문회를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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