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가 김해신공항 추진안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발표하면서 가덕신공항 건립으로 무게추가 급격히 기울어 지면서다.
가덕신공항은 지난 2006년 참여정부의 검토로 동남권 관문공항 후보지로 거론되기 시작한 이후 선거 때마다 부산 민심을 얻기 위한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곤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경선 당시 공약으로 가덕신공항을 내걸었다.
부산시는 가덕신공항을 새로운 동남권 관문공항으로 지어 철도와 항만을 하나로 연결 짓는 국제복합물류시스템인 ‘트라이포트’(Tri-Port) 구축을 통해 부산의 미래 100년을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을 그리기에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신공항 특별법 통과, TK와 PK 간 갈등, 지역주민 우려 해소 등 다양한 과제들이 놓여 있다.
신축년(辛丑年) 2021년에는 부울경이 수십 년간 엎치락뒤치락해온 가덕신공항 논쟁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돗대산 사고’로 논의 시작…장애물 없고 24시간 운항 가능
가덕신공항은 바다를 매립해 짓는 해상공항이다. 활주로 규모는 김해신공항보다 좀 더 넓은 세로 3500m, 가로 60m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가덕신공항은 주변에 높은 산 등 장애물이 없고, 공간이 트여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동남권 신공항 건립에 대한 필요성이 나오게 된 지난 2002년 발생한 ‘김해 돗대산 사고’와 연결돼 있다.
사고 당시 166명을 태운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에 착륙하려던 도중 기상 악화로 돗대산에 추락해 129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지역 시민들은 김해공항 안전성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후 지역사회에서는 안전성 위험이 있는 김해공항을 대체할 신공항 부지로 가덕도를 내세웠다.
◇ 신공항 건립 여부 키를 쥔 ‘가덕신공항 특별법’
무엇보다 가덕신공항 건립 여부는 올해 2월 임시국회에서 열리는 ‘가덕신공항 특별법’ 표결에서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지역사회와 정치권에서는 ‘2030 부산 엑스포’ 개최 이전 가덕신공항을 개항할 수 있도록 하는 가덕신공항 특별법 제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 11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은 오는 2월 표결을 앞두고 있다.
특별법은 2년 이상 걸리는 사전타당성 조사와 예비타당성 조사 과정을 축소하거나 면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입지 선정 절차와 실시설계 수립 등 과정을 대폭 줄이고 조기 착공을 확정해 공항 건설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지역사회에서는 특별법이 통과되면 준공 시점을 최소 2~3년 이상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건립 과정에서 특별한 차질이 없다면 2028년 개항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지후 가덕도허브공항시민추진단 상임대표는 “올해는 무엇보다 가덕신공항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 건립 타당성 조사에만 시간을 허비하게 되면 2030 부산엑스포 개최 이전에 개항하기 어렵다”며 “여야가 힘을 모아 특별법 제정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36명과 부산지역 국민의힘 의원 15명이 가덕신공항 특별법을 발의했다. 국회 재적의 과반이 넘는 151명이 참여한 것으로, 오는 2월까지 큰 이변이 없는 한 국회 문턱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부산시는 특별법이 통과되면 가덕신공항 건설 적정성 검토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 ‘상반된 반응’ 보이는 가덕도 현지 주민들
대다수 부울경 시민이 김해신공항 백지화 소식에 호응을 보내고 있지만, 신공항이 들어설 가덕도 현지 주민들의 반응은 그리 기쁘지만은 않다. 가덕도를 신공항 입지로 만들자는 ‘찬성파’가 있는 반면 환경 훼손, 소음 문제 등을 이유로 공항 건립에 회의적인 ‘반대파’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권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 반복해온 신공항 문제에 지친 기색을 보이고 있다. 신공항 추진 장기화로 인한 도시계획 차질, 토지 규제 등 숱한 규제에 묶여 있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동남권의 미래를 좌우하는 대형 사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현지 주민들을 ‘패싱’(passing) 했다는 불만도 고조되면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11월 김해신공항 검증위의 발표 당시 정은근 가덕도 주민자치위원장은 “신공항 추진 과정에서 정치권이 주민들과 충분히 소통하지 않았다”며 “정작 현지 주민들이 신공항 건립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서 배제되고 있어 불만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 ‘통합신공항 추진’ TK와의 갈등 해소도 숙제
가덕신공항 건립이 가시화되기 위해선 부울경과 대구·경북 간의 첨예할 갈등도 풀어내야 한다. 군위와 의성에 통합신공항을 건설하는 TK는 그동안 가덕신공항을 추진하려는 부울경의 움직임에 여러 차례 날 선 목소리를 내왔다.
이는 2028년 군·민항 동시 개항을 목표로 둔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사업 추진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TK 통합신공항의 항공 수요가 가덕신공항에 흡수돼 ‘동네 공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TK 지역민들의 불안감이 깔려 있다.
최근에는 TK 시민단체가 부산까지 직접 내려와 가덕신공항 반대를 염원하는 규탄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통합신공항 대구·경북시민추진단 12월 11일 부산시청 앞에서 가덕신공항 특별법 규탄대회를 열고 “김해신공항 건립에 대해 원점부터 재논의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해 11월 김해신공항 검증위 발표 직후 권영진 대구시장은 SNS에 “정부가 입만 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김해신공항이 갑자기 문제가 생기고 (신공항을) 가덕도로 옮기겠다는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이처럼 신공항 건립 문제를 놓고 PK와 TK 간 벌어지는 지역 갈등을 매듭짓지 못한다면 특별법 통과가 이뤄지더라도 신속한 건설에 장애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올해부터 본격적인 ‘속도전’ 나서야
특별법이 통과돼도 2030 월드 엑스포 개최 이전에 신공항을 열기 위해선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토교통부의 동남권 신공항 로드맵에 따르면 가덕신공항 건설까지 걸리는 기한은 16년(2036년)이다. 먼저 항공 수요조사에 12개월이 소요되고, 사전타당성 및 예비타당성 조사를 36개월간 진행한다. 이후 기본계획수립에는 12개월이 걸리며 실시계획 승인과 공사발주도 12개월 진행된다.
이에 반해 부산시가 지난해 11월 제시한 ‘가덕신공항 건설 로드맵’에는 2029년까지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시는 ‘패스트트랙’을 처리해 설계와 시공을 병행해 완공 시한을 단축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같이 정부와 부산시는 가덕신공항 건립 속도를 두고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부산시의 추진안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가덕신공항 추진에 ‘패스트트랙’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헌영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아직 가덕신공항 건립에 필요한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며 “특별법이 통과되면 예타 조사가 면제되거나 ‘가덕신공항의 적정성 검토’로 대체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TK지역과 야당의 저항뿐만 아니라 신공항에 대한 각종 평가 시 주민들의 민원 사항을 해결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며 “자칫하면 민원 문제 해결에만 많은 시간이 소요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립 이후에도 가덕신공항이 ‘동남권 허브공항’으로 자리 잡기 위해선 항공기를 이용한 전기, 전자,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유치를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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