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장 여는데 헬스장은 왜 안되나” 불복의 ‘오픈 시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4일 18시 19분


정부가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를 17일까지 연장하면서 4일 서울 용산구 한 헬스장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영업을 하고 있다. 이 헬스장은 정부의 단속을 감수하고 항의 차원에서 문을 열어 오픈시위로 보여주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정부가 수도권 거리두기 2.5단계를 17일까지 연장하면서 4일 서울 용산구 한 헬스장이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영업을 하고 있다. 이 헬스장은 정부의 단속을 감수하고 항의 차원에서 문을 열어 오픈시위로 보여주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태권도장도 되고 발레교습소도 되는데 왜 같은 운동시설은 우리만 안 되나요?”

4일 오전 9시경 서울 용산구에 있는 A 피트니스센터.

이른 아침 시간부터 문을 연 센터에는 어느새 회원 대여섯 명이 나와 운동을 하고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1m 이상 거리를 유지한 채로 러닝머신 등 곳곳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이 피트니스센터가 다시 회원을 받은 건 거의 한 달 만이다.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8일부터 피트니스센터들은 줄곧 휴업에 들어갔다. 3일 정부 발표대로라면 해당 업소들은 2.5단계가 17일까지 연장돼 지금도 문을 열 수 없다. 하지만 센터를 운영하는 김성우 씨(44)는 이날 영업을 강행했다.

“억울하잖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심각해 방역 조치가 필요하단 건 이해하죠. 그런데 그 기준이 너무 불합리해요. 문을 닫은 채 매달 임대료와 관리비로 1000만 원씩 내요. 회원들한테 환불해준 금액만 3000만 원이 넘습니다. 오죽하면 이렇게 문을 열었겠어요.”

4일 수도권에서 A 센터를 비롯한 일부 피트니스센터들이 방역지침에 항의하는 뜻에서 영업을 재개한 이른바 ‘오픈 시위’를 벌였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가뜩이나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업종별 영업 허가 기준에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동시간대 9인 이하 대면수업 가능’ 지침이 내려진 학원가도 혼란이 벌어졌다.

특히 이날은 실내체육시설들의 원성이 유독 컸다. 같은 운동시설인 태권도장이나 검도장 등은 문을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역시 ‘오픈 시위’를 감행한 경기 안양의 한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는 이정혁 씨(38)도 “집단 감염이 발생한 스키장도 문을 열게 해주면서 왜 우리만 안 되냐”며 “피트니스센터는 1월이 대목이다. 새해에 등록 회원이 가장 많은데 올 한 해 장사를 망친 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영업을 강행한 업소들은 단속에 걸리면 추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치구를 통해 이미 단속 공문을 내려 보냈다. 위반 시엔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지자체장 명의로 계고장을 발부하고 300만 원 이하 벌금을 부여할 수 있다. 위반이 지속되면 형사 고발이 가능하며, 확진자가 나오면 구상권 청구도 진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보건복지부는 형평성 논란이 일자 “운영을 허용한 일부 실내체육시설의 특수성을 감안해 달라”고 부탁했다. 태권도장 등은 겨울방학 ‘돌봄’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들 시설도 이용자 연령이 고교 3학년 이하에 동시간대 교습 인원이 9명 이하여야만 한다”고 전했다.

골프장도 희비가 엇갈렸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현재 야외 골프연습장은 영업이 가능하지만, 스크린골프장은 실내건 야외건 집합 금지 대상이다. 서울 중랑구에서 야외 스크린골프장을 운영하는 우모 씨(54)는 “실내·실외 기준이 적용된 것도 아니고 명확한 설명도 해주질 않았다”며 “사람이 모이지 않게 하려는 취지라면 야외 골프연습장도 금지해야 맞지 않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학원이나 교습소 역시 혼란과 원성이 뒤섞이고 있다. ‘동시간대 9인 이하 대면수업’ 기준이 애매하다는 반응이 많다. 학원 규모가 아니라 대면수업 인원이 기준이라 운영 방식을 놓고 고심이 크다. 일부 중대형 학원들은 대면수업과 비대면 온라인수업을 함께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의 한 수학학원은 “벌써부터 학부모들의 ‘우리 아이는 대면수업에 꼭 넣어 달라’는 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9명을 맘대로 고를 수도 없어 난감한 지경”이라고 털어놨다. 노원구에서 미술입시학원을 운영하는 서모 씨(54)는 “우리 학원은 전체 원생이 180명이 넘어 9명씩 수업을 듣게 하려면 시간표가 엄청 복잡해진다. 학부모들이 원하는 요일이나 시간이 많이 겹쳐서 이걸 어떻게 양해를 구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금 업소들의 집합 제한은 당연히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기준이 명확하고 합리적이어야 사람들이 수긍하고 조치를 지킨다. 오히려 반발이 생기면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4일 브리핑에서 “지난달 8일부터 실내체육시설들이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연장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끝나는) 2주 뒤 집합 금지 시설에 대해 어떻게 허용할 수 있을지, 어떤 방향으로 할 수 있을지 논의해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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