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신고한 의사 “정인이 축 늘어져 체념한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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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월 5일 11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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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마지막으로 본 정인이의 모습은 축 늘어져 자포자기한 듯 체념한 느낌이었다.”

입양된 후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 정인이를 진찰한 후 경찰에 직접 아동학대 의심신고를 했던 소아과 전문의 A 씨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이렇게 떠올렸다.

지난해 10월 13일 정인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총 세 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다. A 씨는 정인이가 사망하기 20일 전 마지막 신고를 했다.

A 씨는 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정인이는 제가 자주 진료를 했던 아이는 아니고 지난해 1월 말쯤부터 9월 23일 신고 당일까지 예방접종 포함해서 8~9번 정도 진료했다”며 “당시 어린이집 원장께서 오랜만에 등원한 정인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인다면서 병원에 데려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 때 두 달 만에 정인이를 본 상황이었는데 두 달 전과 비교해서 너무 차이나게 영양상태나 정신상태가 정말 불량해보였고 진찰 소견상 어떤 급성 질환으로 인한 일시적 늘어짐이나 이런 게 아닌 걸로 판단됐다”며 “입안에 난 상처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공개된 정인이 입양 전 후 모습.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공개된 정인이 입양 전 후 모습.


A 씨는 “원장께서도 한두 달 안 보다가 그날 오랜만에 정인이를 봤다고 하셨다”며 “15개월짜리 아기들은 보통 가만 안 있는데, 정인이의 경우 잘 걷지도 못하고 원장님 품에 축 늘어져 안겨있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또 “그 이전 지난해 5월경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1차로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하셨을 때, 허벅지 안쪽 멍 자국에 대한 아동학대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들과 아동보호기관 직원, 부모가 병원에 온 적이 있다. 같은 해 6월경엔 정인이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온 적이 있는데 왼쪽 쇄골 부위가 부어 있는 것 때문이었다. 쇄골 골절이 의심돼 엑스레이를 찍어서 확인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저희 병원엔 엑스레이 촬영기기가 없어 다른 병원에 가서 바로 찍어 봐야한다고 말씀드렸다”며 “이후 7월경 예방접종을 위해 정인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 접종 전 진찰 중 구강 내에 깊고 큰 상처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진료 내용이 있었던 차에 9월 23일 정인이의 모습을 보니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심각한 아동학대라는 생각이 들어 신고했다”며 “경찰들이 상당히 빨리 병원에 출동했다. 그동안 정인이에 대한 진찰 과정을 자세하게 말씀드렸고, 경찰들도 바로 아동보호기관 담당자들과 정인이 부모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 그 이후론 따로 연락이 없었지만, 어떤 조치가 취해졌으리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A 씨는 “세 번이나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설사 그게 조사 과정에서 법적인 뚜렷한 물증이 없었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내며 “아동학대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라도 하더라도 사실일 가능성 1%에 더 무게를 두고 접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연제 동아닷컴 기자 je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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