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터진후 ‘즉각분리’ 도입…실상은 ‘쉼터’ 찾아 삼만리

  • 뉴스1
  • 입력 2021년 1월 5일 14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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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를 찾은 추모객이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양을 추모하고 있다./뉴스1 © News1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를 찾은 추모객이 입양 후 양부모에게 장기간 학대를 당해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양을 추모하고 있다./뉴스1 © News1
생후 16개월 영아 ‘정인’(입양전 이름)양이 3번의 학대 의심 신고에도 가해자인 양부모와 분리되지 않아 결국 숨지면서 국민들이 공분을 표출하고 있다.

정부는 가해자와 피해 아동을 빠르게 분리하는 ‘즉각분리’ 제도 도입으로 아동학대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현장에서는 쉼터부터 늘려달라는 아우성이 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를 분리하더라도 수용할만한 시설이 부족한 상황이다.

5일 청와대에 따르면, 강민석 대변인은 전날(4일) “지난달부터 보건복지부와 경찰은 지침 변경을 통해 2회 이상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부모로부터 신속하게 분리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즉각분리 제도가 법으로 3월부터 시행되면 보다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즉각분리 제도는 두 번 이상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72시간 동안 아동과 가해자를 즉각 분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가정 분리 조치가 지나치게 적다는 지적이 과거부터 제기됐기 때문에 해당 법은 필요한 법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18년 발생한 총 아동학대 사례 2만4604건 중 분리 조치된 경우는 3287건(13.4%)에 불과했다.

다만, 즉각 분리가 시행되더라도 학대피해 아동을 ‘어디에’ 분리할지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달린다. 원가정 분리된 학대피해 아동들이 가게 되는 학대피해 아동쉼터가 부족하다는 건 아동복지 관계자들에게는 공공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역시 “학대 피해 아동이 쉼터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면 2개월가량 원가정 복귀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해서 아동들이 쉼터에 오래 머무르는 편”이라며 “저희 지자체에는 쉼터가 별로 없는데, 쉼터에 인원이 차 있다 보니 피해 아동이 다른 지역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쉼터는 2020년까지 76개소가 설치됐고 한 쉼터당 약 5~7명 정도만 수용 가능해 고작 500여명 아동만 받을 수 있다. 또한, 쉼터 수가 지자체별로 상이하기 때문에 쉼터가 적게 설치된 지자체의 공무원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지역으로 아이를 보내야만 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역시 쉼터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며 “학대가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다 보니 기본적으로 쉼터 자체가 전국 모든 시군구에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보는데 쉼터가 부족한 건 맞다”며 “쉼터가 남녀로 구분돼있는데 지자체 내에 여아 쉼터만 있다고 한다면 남아는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올해 쉼터가 91개소로 늘어날 예정이지만, 아동학대 건수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현상 유지에 가깝다. 전체 아동학대 건수는 2018년 2만4604건에서 2019년 3만45건으로 약 22%가량 늘어났지만, 쉼터는 아동학대 증가율에 못 미치는 약 20%가량만 늘어나기 때문이다. 2019년 아동학대 건수는 2015년(1만1715건)과 비교하면 156%가 증가했을 정도로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쉼터가 부족하다 보니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이 학대 피해 아동이 머무를만한 시설을 찾아다녀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는 대부분 지자체에 고작 1~3명 정도만 배치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의 업무를 과중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아이를 원가정 분리할만한 시설이 부족하다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들의 호소가 이어졌다. 지난 1일 마감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라는 청원은 5454명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자신을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으로 소개한 청원인은 “경찰과 복지부의 2회 이상 재신고 분리조치 지침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우려가 된다”며 “72시간이내 아동을 보호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학대조사를 수행하고 사례를 판단하고 다시 아동을 데려오고 장기시설을 알아보는 업무 매뉴얼도 벅찬데 시설도 부족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밝혔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아동학대 조사 업무부터 자리가 남는 쉼터를 찾아다니는 일까지 과중한 업무를 담당하면, 결국 학대피해 아동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2019년 아동학대 발견율을 놓고 보면 미국이나 호주는 9%가 넘지만 우리나라는 3.81%에 그칠 정도로 저조한 데, 담당자의 업무 과중이 그 이유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최근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동참한 모양새지만, 이미 보건복지부 2021년 예산안이 확정된 상황에서 어떻게 시설을 늘릴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어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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