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5시 30분. 주간근무를 방금 마친 김현아 간호사(47·여·사진)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기 평택시 박애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코로나19 확진자 한 명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다. 첫 코로나19 민간거점 전담병원인 박애병원 중환자실에는 요양병원에서 이송된 고령 확진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김 간호사는 21년간 중환자를 돌본 베테랑이다. 특히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며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됐다. 김 간호사가 일하던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에 사망자가 나오며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당시 그는 “메르스가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더 처절하게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박애병원에서 김 간호사가 돌보는 중환자 중 한 명을 뺀 나머지는 모두 치매나 의식불명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욕창 방지를 위해 수시로 자세를 바꿔 주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 모두 간호사 몫이다. 중환자실에 별도의 간병 인력이 없어서다. 김 간호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몸이 10개였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기 중환자들은 코로나로 폐가 심하게 손상된 상태다. 고농도 산소 치료를 받고 있지만 산소포화도가 70%를 밑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소포화도가 90% 아래로 떨어지면 장기에 손상이 올 수 있다. 퇴근길 내내 김 간호사가 걱정했던 환자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메르스, 대구동산, 박애병원… 감염병과 3번째 전투
돌아온 ‘메르스 전사’
김현아 간호사는 2017년 간호사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1차 유행이 터지자 김 간호사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으로 달려가 한 달 동안 환자를 돌봤다. 3차 유행이 발생하자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박애병원에서 중환자를 보살피고 있다. 그는 “감염병 유행은 전쟁 상황과 같은데 아군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이길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냐”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1차 유행 때보다 더 어렵다. 보통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일할 땐 2시간 근무, 2시간 휴식이 원칙이다. 1개 근무조 4명 중 2명이 중환자 7, 8명을 교대로 돌보도록 돼 있다. 김 간호사는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4명 모두 방호복을 입고 병실에 들어와 있기 일쑤”라고 했다. 4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동안 김 간호사가 방호복을 벗고 쉰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파견 의료진은 4일 기준 의사 2543명, 간호사 3524명 등 총 6931명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인력 부족은 1차 유행 때보다 심각하다. 김 간호사는 “대구에서 일할 땐 ‘2시간 근무, 2시간 휴식’ 원칙을 지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잠시 앉을 짬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구로 지원이 집중된 1차 유행 때와 달리 지금은 ‘전선’이 훨씬 넓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자원봉사 인력을 모으는 것 이상으로 기존 인력 유출을 막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간호사는 “병원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기존 간호사들이 현장에 남아 업무를 이끌어야 한다. 파견 간호사만으로는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외과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쓴 책은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다. 3차 유행이 시작했을 때 김 간호사는 대본 집필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그의 바람은 병원 밖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일상으로, 작가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병원에는 여전히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이 있어요. 거리 두기를 지키는 삶이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의료진을 믿어주세요. 저도 제가 있는 자리에서 끝까지 바이러스를 막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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