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10개면 좋겠다” 코로나 최전선에 선 ‘메르스 전사’ 김현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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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에 계신 한 분이 위중하세요. 오늘 밤을 넘기실 수 있을지….”

4일 오후 5시 30분. 주간근무를 방금 마친 김현아 간호사(47·여·사진)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기 평택시 박애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인 코로나19 확진자 한 명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다. 첫 코로나19 민간거점 전담병원인 박애병원 중환자실에는 요양병원에서 이송된 고령 확진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

5일 경기 평택시 박애병원에서 김현아 간호사가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다.
5일 경기 평택시 박애병원에서 김현아 간호사가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다.
김 간호사는 21년간 중환자를 돌본 베테랑이다. 특히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며 많은 사람이 그의 이름을 알게 됐다. 김 간호사가 일하던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에 사망자가 나오며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조치가 내려졌다. 당시 그는 “메르스가 환자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더 처절하게 저승사자를 물고 늘어지겠다”고 심경을 밝혔다.

박애병원에서 김 간호사가 돌보는 중환자 중 한 명을 뺀 나머지는 모두 치매나 의식불명으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욕창 방지를 위해 수시로 자세를 바꿔 주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 모두 간호사 몫이다. 중환자실에 별도의 간병 인력이 없어서다. 김 간호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몸이 10개였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기 중환자들은 코로나로 폐가 심하게 손상된 상태다. 고농도 산소 치료를 받고 있지만 산소포화도가 70%를 밑돌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소포화도가 90% 아래로 떨어지면 장기에 손상이 올 수 있다. 퇴근길 내내 김 간호사가 걱정했던 환자도 결국 세상을 떠났다.




메르스, 대구동산, 박애병원… 감염병과 3번째 전투


돌아온 ‘메르스 전사’


김현아 간호사는 2017년 간호사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작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1차 유행이 터지자 김 간호사는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으로 달려가 한 달 동안 환자를 돌봤다. 3차 유행이 발생하자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박애병원에서 중환자를 보살피고 있다. 그는 “감염병 유행은 전쟁 상황과 같은데 아군이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이길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냐”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 지켜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1차 유행 때보다 더 어렵다. 보통 레벨D 방호복을 입고 일할 땐 2시간 근무, 2시간 휴식이 원칙이다. 1개 근무조 4명 중 2명이 중환자 7, 8명을 교대로 돌보도록 돼 있다. 김 간호사는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4명 모두 방호복을 입고 병실에 들어와 있기 일쑤”라고 했다. 4일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는 동안 김 간호사가 방호복을 벗고 쉰 시간은 1시간 남짓이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파견 의료진은 4일 기준 의사 2543명, 간호사 3524명 등 총 6931명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인력 부족은 1차 유행 때보다 심각하다. 김 간호사는 “대구에서 일할 땐 ‘2시간 근무, 2시간 휴식’ 원칙을 지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잠시 앉을 짬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구로 지원이 집중된 1차 유행 때와 달리 지금은 ‘전선’이 훨씬 넓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자원봉사 인력을 모으는 것 이상으로 기존 인력 유출을 막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 간호사는 “병원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기존 간호사들이 현장에 남아 업무를 이끌어야 한다. 파견 간호사만으로는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외과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아 쓴 책은 드라마 제작을 앞두고 있다. 3차 유행이 시작했을 때 김 간호사는 대본 집필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그의 바람은 병원 밖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일상으로, 작가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병원에는 여전히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이 있어요. 거리 두기를 지키는 삶이 힘들더라도 조금만 더 참고 의료진을 믿어주세요. 저도 제가 있는 자리에서 끝까지 바이러스를 막아볼게요.”

이지운 easy@donga.com·강동웅 기자
#김현아#메르스 전사#코로나#최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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