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사례가 가장 많은 2세 미만 아동 중 상당수는 외부의 신고 의무자와 접촉할 기회가 없다. 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집에만 머무른다면, 사실상 학대를 당하더라도 정부 시스템하에서 파악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정부가 ‘영유아 건강검진’ 제도를 보완하고 적극 활용해 영유아에 대한 학대 의심 정황을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생후 71개월까지 총 8번에 걸쳐 진행되는 영유아 건강검진은 상당수 아이들에게는 의사와 같은 신고 의무자와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단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등원하려면 부모가 영유아 건강검진 서류를 제출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검진을 받지 않아도 된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통해 아동학대를 발견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받지 않는다고 해서 과태료 부과 등 법적인 조치가 없다 보니 아동학대 가해자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다”며 “아동이 생일자 전후 일주일 이내에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부모에게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등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을 통해 위기 아동 발굴에 ‘영유아 건강검진’ 수검 여부를 활용하지만, 시스템 자체가 빅데이터로 운영돼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어린 영아의 경우는 위기 아동으로 판정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스템상 한계가 있어 학대 피해를 받은 어린 아동을 발견하기 어렵다”며 “만 2세 전에 시행되는 초기 3번의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의료적 방임으로 보고 가정방문을 의무화하는 조치가 도입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영유아 건강검진 시에도 ‘정인이’ 사건처럼 의사가 학대 유무를 파악하지 못하고 단순히 구내염으로 진단하는 사례가 나오지 않도록, 의료 현장에서의 보완도 요구된다.
건강검진을 담당하는 의사가 이전 검진 기록이나 아동학대 신고 접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검진 내용에 아동학대 관련 지표를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정인양을 진단한 의사는 3번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고지받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정 교수는 “아이가 전과 다른 병원에서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으면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의사가 전 기록을 볼 수 없어 문제”라며 “이전에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다는 것도 의사가 알 수 있게 하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영유아 건강검진에 아동학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관련 지표를 넣는 게 중요하다”며 “아동 학대 발견율을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건강검진에 관련 지표를 넣을 경우,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의사들의 책임이 커질 수 있어 의료계의 반대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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