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살릴 기회 수차례…수사·입양·보호기관 안일한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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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월 6일 20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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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유기, 방임혐의로 기소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2021.1.6/뉴스1 © News1
6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보내온 근조화환이 놓여져 있다. 유기, 방임혐의로 기소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은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2021.1.6/뉴스1 © News1
양부모의 학대로 세상을 떠난 ‘정인이(입양 전 이름) 사건’ 내막이 차츰 드러나면서 수사기관과 입양·보호기관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다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또 다른 아동학대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이 아동학대 사례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연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월 장모·안모 부부에게 입양된 정인양은 같은 해 10월13일 양천구 한 병원의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정인양은 사망 당일 췌장이 절단되는 심각한 복부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쇄골 등 몸 곳곳에는 시기가 다른 골절 흔적도 있었다.

16개월 아동이 장기가 끊어지는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하기까지, 관계 기관들은 몇 차례나 아이를 살릴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했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지난해 5월, 6월, 9월 무려 세 차례나 학대의심 신고를 접수했지만 학대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건을 내사 종결하거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과 입양기관은 정인양이 숨지기 수개월 전부터 학대 정황을 파악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서울 양천구 입양아동 사망사건 보고’,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서’ 등을 보면 우리나라 아동학대 대응 시스템의 허술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 의원실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서울 양천구 입양아동 사망사건 보고’ 자료에 따르면 정인양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는 첫 학대의심 신고가 접수된 직후인 지난해 5월26일 학대정황을 파악했다. 입양 후 이뤄진 두 번째 가정방문 조사를 통해서다.

이후 홀트는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정인양의 쇄골 골절, 2주간의 깁스 사실 등을 전달받았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6월26일 양부와 전화통화만 했다. 또 ‘양모가 아이를 30분가량 자동차에 방치했다’는 추가 신고가 접수된 뒤, 7월2일 3차 가정방문에 나섰으나 별도 대응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정인이의 체중이 감량돼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가 들어온 이후에는 9월18일에서야 방문없이 통화만 이뤄졌다. 홀트 측은 가정방문을 요청했으나 양모가 거부한다는 이유로 가정방문을 10월15일로 한달가량 늦춘 것으로 조사됐다.

10월3일에는 양부와 통화한 이후 ‘아동이 이전의 상태를 회복해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학대 정황을 파악하고도 4개월가량 아이를 방치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홀트는 입장문을 내고 “사례관리 기간인 8개월간 3회의 가정방문과 17회의 전화 상담을 진행했다”며 입양 후 사후관리 매뉴얼을 지켰다고 밝혔다.

또 “복지회가 아동학대를 의심한 시점은 2차 아동학대 신고 접수 사실을 확인한 뒤인 2020년 7월”이라며 “이후 강서 아보전을 통해 경찰 수사 중임을 확인했으나 아보전으로부터 경찰이 불기소 송치로 종결할 확률이 높다고 전달받았다”고 설명했다.

정인양의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서’에서도 아보전의 부실평가가 드러났다. 정인양은 세 차례 시행된 평가에서 총점 9점 만점에 각 3점, 2점, 3점을 받았다. 통상 평가 기준 점수가 4점이 넘어야 아동학대 아동으로 구분, 즉각적인 보호 조치가 시행된다.

아보전은 1~3차 평가에서 ‘아동이 학대행위자로부터 분리보호를 요구하는 의사를 표현한다’는 항목에 ‘아니오’ 에 체크를 했다. 이를 두고 16개월 영아가 제대로 된 의사표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평가 척도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방임을 포함한 학대로 초래된 발육 부진이나 영양 실조 혹은 비위생 상태가 관찰된다’는 항목에 ‘아니오’라고 체크했는데, 마지막 신고자였던 소아과 의사의 경찰신고 녹취록 내용과 상반되는 부분이어서 부실 평가가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신 의원실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지난해 9월23일 소아과 의사 A씨는 정인이가 병원을 방문한 직후 경찰에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전화를 했고 ‘아이가 혼자 걷지도 못할 정도로 영양상태가 너무 안좋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신 의원은 “형식적인 아동 보호절차와 허술한 시스템이 정인양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료·법률전문가, 아동보호전문 요원, 경찰 등이 아동학대 의심 사례를 공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지역사회 아동학대 협의체’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 같은 시스템이 없다면 제2, 제3의 정인이 사건은 언제든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배근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장은 “관련 기관끼리 피해 아동에 대한 정보, 학대 정황 등이 제대로 공유가 안되고 있다”며 “각기 다른 기관을 연계할 수 있는 시스템만 구축됐어도 정인이 사건과 같은 안타까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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