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아동 입양 전과 후 정부 기관이 직접 입양 가정을 조사하지만 우리 정부는 민간에 입양 가정 조사를 떠맡기고 있어 입양아 보호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입양을 성사시키는 게 주목적인 민간 입양 기관이 양부모 조사를 할 경우 문제 발견과 해결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어 정부가 나서 입양 가정을 엄밀하게 살펴보고 위기 상황에선 강제로 개입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로 사망한 정인이의 입양을 주선했던 입양 기관 역시 사망 전 학대 정황을 파악하고도 실효성 있는 조치를 하지 못했다.
○ “정부가 책임지고 입양 전후 조사해야”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은 2018년 ‘입양 제도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민간 입양 기관에 입양 전 양부모 조사 업무를 맡기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안문희 전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입양 기관은 본질적으로 입양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양부모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정부 기관이 입양 가정 조사를 맡아야 투명하고 실효성 있게 입양 가정을 관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독일과 영국, 캐나다, 스웨덴 등 선진국들은 국가 기관이 입양 업무를 전담한다. 정부는 사전 조사 외에도 입양 전 양부모를 상대로 최대 6개월간의 ‘시험 양육’이나 일시적 동거 등을 통해 적격성을 판단한다. 입양 후에도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가정을 방문해 아동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조사한다.
국내의 경우 ‘입양 전제 가정위탁제’를 통해 양부모가 입양 전 일정 기간 아이를 돌보게 하고 입양 후에는 1년간 4차례 입양 가정을 조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입양 가정 조사와 사후 관리 주체가 모두 민간 입양 기관이라는 것이다.
입양 기관은 입양 시 양부모에게 알선비, 인건비, 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수백만 원을 지급받는다. 입양 가정 역시 아이가 만 17세가 될 때까지 월 15만 원의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다. 민간 입양 기관이 양부모를 상대로 엄밀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하기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입양 후 4차례 조사 가운데 2회는 가정방문을 해야 하지만 입양 기관이 가정방문을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국가가 기관의 이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민간 기관에 아동 입양을 맡겨놓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아동의 복리를 위해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후 고아 등 해외 입양 수요가 많았던 1950, 60년대 민간이 입양 업무를 전담했던 관행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 홀트, 정인이 학대 정황에도 “양모와 안정적 상호작용”
정인이 입양을 주선했던 홀트아동복지회는 사후 관리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홀트 측은 지난해 5월 26일 아동보호전문기관을 통해 학대 신고를 전달받고 정인이의 집을 방문했다. 홀트 측은 정인이 몸에서 멍 자국을 발견했지만 양부모에게 “양육에 민감하게 대처해 달라”고 안내하는 것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이 입수한 지난해 7월 2일 홀트의 ‘입양 후 가정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홀트는 정인이 몸에서 학대 징후를 발견했다. 홀트 측은 “정인이는 아토피 증상이 있고 몸 군데군데 피부의 착색이 보인다. 6월 중 쇄골뼈에 약간의 금이 가 2주 정도 깁스를 했지만 현재 특별히 아픈 곳은 없다”고 적었다.
홀트는 보고서에 정인이가 방임 피해를 당했다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판단을 기록하면서도 ‘종합 검토의견란’에 “양모와 정인이의 상호작용이 안정적이며 양부모는 정인이에 대한 애정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고 적었다.
홀트는 또 지난해 9월 정인이 양부모에게 가정방문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한 달 뒤 양부모와의 통화에서 “정인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열흘 뒤 정인이는 숨졌다. 홀트는 “입양 기관은 양부모가 가정방문을 거절하면 강제로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다”고 해명했다. 홀트는 2019년 기준 보조금과 후원금, 입양알선비 등을 통해 약 893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 중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받은 보조금은 약 467억 원(52.3%)이다. 홀트는 2014년 보건복지부 특별감사 결과 사후관리 보고서 부실 작성 등 입양특례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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