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 ‘정인이 사건’ 대국민사과
양부모 말만 믿고 사건 종결처리, 소아과 전문의 직접 신고도 무시
아동학대 막을 근본대책 안보여… 담당자들 징계도 솜방망이 그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의 기본 사명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앞으로 사회적 약자 보호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6일 김창룡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정인이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까지 내놨다. 하지만 경찰의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초동 대응과 수사 부실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구조 기회 3번 외면… 3차 신고 20일 뒤 사망
지난해 5월부터 9월까지 어린이집 원장과 이웃 주민, 소아과 원장 등은 정인이의 학대 징후를 발견하고 각각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양부모에 대해 모두 내사 종결 또는 무혐의 처분해 정인이를 양부모와 분리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
최초 신고가 있었던 지난해 5월 26일은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이 정인이의 허벅지 양쪽에 멍 자국이 있다며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이 신고를 전달받은 경찰은 몽고반점 및 아토피로 인한 상흔으로 추정된다며 내사 종결했다. “다리 마사지를 하다가 멍이 들었다”는 양부모 주장을 그대로 믿은 것이다. 지난해 7월 3일에는 “양부모가 정인이를 차량에 방치했다” “정인이가 쇄골 골절로 깁스를 하고 있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가 또 접수됐다.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양모는 정인이를 폭행해 좌측 쇄골을 골절시켰다. 하지만 경찰은 “쇄골 부위는 쉽게 다칠 수 있어 학대로 단정할 수 없다”는 의료인의 말과 “혼자 자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차에 둔 것”이라는 양부모 진술을 받아들여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3차 신고는 정인이를 진료한 소아과 원장이 신고했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빠진 정인이의 영양 상태가 불량하다고 의심한 어린이집 원장이 정인이를 소아과에 데려갔다. 정인이를 진찰한 소아과 원장은 112에 전화를 걸어 “혼자 걷지도 못할 만큼 영양 상태가 안 좋다”며 학대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지난해 9, 10월 사이 정인이는 뒤통수에 7cm가량 골절이 있었고, 갈비뼈 여러 곳이 부러진 상태였다.
경찰은 양부모가 또 다른 병원에서 ‘입안의 염증’이라는 진단을 받아오자 이를 그대로 믿고 사건을 그대로 내사 종결했다. 3번의 신고는 모두 서울 양천경찰서에 접수됐지만 매번 다른 수사팀에 배당됐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13일 정인이가 숨진 다음 날 양부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뒤늦게 입건했고, 약 한 달 뒤인 11월 11일 양모를 구속했다.
○ 수사 담당 12명 중 7명 경징계… 대책도 부실
경찰은 지난해 10월부터 초동 대응과 부실 수사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수사를 담당한 양천경찰서 관계자에 대한 진상조사를 했다. 경찰은 정인이 학대 신고를 처음 담당한 2명은 주의, 2차 신고를 담당했던 2명은 경고 처분을 내렸다. 전·현직 여성·청소년과 과장과 계장도 경고와 주의에 그쳤다. 3차 신고 사건을 담당한 팀장을 포함한 3명과 학대예방경찰관(APO·Anti-abuse Police Officer) 2명에 대해선 이달 중순 징계위원회를 열 예정이다.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는데 담당 경찰 12명 중 7명에 대해 주의와 경고 등 경징계 조치만 한 것이다.
김 청장이 제시한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아동학대 수사를 담당할 구체적 방안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아동보호기관 관계자는 “정인이 사건은 아동학대 수사에 대한 경찰의 전문성 부족이 낳은 참변”이라며 “전문인력 확충 및 의료기관과의 유기적 협력 강화 등 대대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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