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위안부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
1심 "국가면제 인정 어려워…재판권 행사"
국제재판관할권·손해배상 책임 모두 인정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할머니들의 손을 들었다. 일본은 ‘주권 국가는 타국 법정에서 재판받을 수 없다’는 원칙을 앞세웠지만, 법원은 반인도적 범죄에는 해당되지 않는 원칙이라며 선을 그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고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 사건 쟁점은 ‘주권면제’ 원칙에 대한 예외가 인정될 지 여부였다. 앞서 일본 정부는 이 사건 소송이 헤이그송달협약 13조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소장 접수 자체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우선 이 사건 행위는 주권면제의 예외 사유 중 하나인 외국 국가의 ‘사법적(私法的) 행위’는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외국 국가가 ‘사인(私人)’의 지위에서 행한 행위는 주권면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 사건은 외국 국가의 주권적 행위이므로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주권면제가 국제법 주체 간에 합의한 원칙이라고 해도 이 사건 반인도적 범죄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1969년 체결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53조는 국제법규에 상위규범인 ‘절대규범’과 하위규범 사이에 구별이 있고, 하위규범은 절대규범을 이탈하면 안 된다고 명시하는데, 법원은 국제 강행규범을 상위개념인 절대규범으로 두고 그보다 하위규범인 주권면제 이론이 이를 일탈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주권면제 이론은 주권국가를 존중하고 함부로 타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도록 하는 의미를 가지는 것일 뿐”이라며 “절대규범(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해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주권면제 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위해 형성된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또 “피고가 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하더라도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한 결과가 도출된다”며 “(그러한 해석에 따르면) 어느 국가가 다른 국가의 국민에 대해 인도에 반하는 중범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 여러 국제협약에 위반됨에도 이를 제재할 수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재판부는 재판권 행사의 근거로 ▲우리 헌법 및 세계인권선언에 따른 ‘재판받을 권리’ ▲주권면제의 실체법상 권리 및 이론의 가변성 ▲협상력, 정치적 권력이 없는 개인은 소송 외 손해배상의 방법이 없다는 한계 등을 제시했다.
한편 법원은 대한민국 법원이 이 사건에 대해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보고, 일본 측의 손해배상 책임도 인정했다. 특히 “이 사건 행위는 일본제국이 비준한 조약 및 국제법규를 위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쿄재판소 헌장에서 처벌하기로 정한 ‘인도에 반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또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는 이 사건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판단,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일본 측은 그동안 위안부 관련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위 2건의 합의로 양국간 모든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해온 바 있다.
이날 판결은 우리나라 법원에서 진행 중인 일본 정부 상대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 중 가장 먼저 나오는 판단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대리하고 있는 또 다른 위안부 소송은 오는 13일 1심 선고가 내려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