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잘리자 자격증 공부… 희망퇴직 뒤 창업 도전… “영꿈 통장에 차곡차곡 입금합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9일 03시 00분


[2021 새해특집 / 청년들이 만드는 ‘영꿈 통장’]
실패를 밑거름 삼아 다시 뛰고 막다른 길에서 찾은 새로운 꿈
“세상 탓하기보다 초심 새겨”
“도전 그 자체만으로 힘이 나요”

“일단 뭐라도 해보자 싶었죠. 막다른 길이라도 자포자기하지 말자고.”

취업준비생이었던 정연지 씨(25)는 지난해 초 앞이 막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좁아진 취업문. 이대로 아무 것도 못 한 채 끝나나 하는 불안이 컸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바꿔먹었다. ‘아직 내 길을 찾지 못한 것뿐이야.’ 연지 씨는 평소 관심 있는 베이커리에 도전했다. 처음엔 칼질도 서툴렀지만, 이젠 웬만한 빵 종류는 척척 만든다. 지난해 11월 드디어 한 카페에 작은 수량이지만 납품도 시작했다. 연지 씨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나만의 길을 찾았다는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2020년은 청년들에게 ‘영꿈 통장’을 꿈꾸기도 벅찬 한 해였다. 코로나19가 몰아친 세상은 젊은 청년의 꿈을 피기도 전에 짓밟으려 했다.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대단치 않더라도 꾸준한 도전과 작은 성취를 통해 영꿈 통장을 채워가는 이들은 우리 곁에 존재한다.

“식당 수족관 4통에 있던 물고기와 대게들이 모두 폐사했어요.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뚝 끊겨 방법이 없었죠. 매출 0원이 찍히는 날이 끝없이 이어졌어요.” 지난해 6월 경북 영덕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세영 씨(38)는 개업 10년 만에 처음 큰 위기에 빠졌다. 자신의 모든 꿈을 쏟은 통장인 횟집이 부도 위기에 처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세영 씨는 우연히 마주친 플라스틱컵을 바라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에 회를 담아서 팔면 어떨까.” 상황은 급변했다. 손에 쏙 들어온다는 뜻으로 ‘쏙물회’란 이름을 붙여 판 회는 장사 10년 중에 최고의 매출을 올렸다. 세영 씨는 “세상만 탓하며 매너리즘에 빠졌던 것 같다”며 “내가 이 일을 시작했던 초심을 되찾은 게 절망을 이겨낸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온 대학생 김효진 씨(24)는 지난해 아르바이트에서 잘리고 공모전까지 취소되며 의욕을 잃었다. 하지만 자신의 영꿈 통장을 떠올리며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효진 씨는 “기왕 이렇게 된 거 걱정은 뒤로 미뤄두자 싶었다”며 “알바로 바빠 못 했던 일을 해두자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는 목표로 했던 토익 점수를 얻었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과 사회조사분석사 자격증을 땄다.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다 코로나19로 희망퇴직을 해야 했던 김건우 씨(30). 그는 오랫동안 맘속에 접어뒀던 영꿈 통장을 꺼내들었다. 고교 시절부터 꿈꿨던 ‘내 가게’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건우 씨는 “인생에서 가장 큰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고 했다.

채용전환형 인턴에 합격했으나 미뤄지는 출근에 퇴사를 택한 윤혁진 씨(28)는 요즘 개인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자신이 겪은 일들을 담담히 담은 글들은 최근 독자들이 크게 늘며 많은 응원을 받고 있다. 혁진 씨는 “모르는 분들의 응원을 거름 삼아서 관광업계에서 일하겠다는 꿈을 위해 다시 도전하려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에서 실내건축학을 전공했으나 ‘재즈 기타리스트’라는 영꿈 통장을 개설한 조유윤 씨(25). 그는 조만간 통장에 꿈을 입금하려 미국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다. “주위에선 저보고 독특하다고들 하시긴 해요. 하지만 잘 둘러보면 언제 출발하느냐는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자신의 꿈을 찾아 삶의 방향을 바꾸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진짜 하고 싶은 건 꿈을 이루는 게 아니라 꿈을 향해 도전하는 게 아닐까요.”

○ 특별취재팀

▽팀장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강승현 신희철 전채은 이소연 김태성 신지환 이청아 기자(이상 사회부)


#영꿈 통장#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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