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각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우리 법원은 일본이 ‘국가면제’ 원칙을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에 대해 일본 법률도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며 판결문에서 조목조목 반박한 것으로 11일 파악됐다.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상대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상 원칙이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판사 김정곤)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문에 따르면 일본은 2009년 ‘외국에 대한 일본의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 제10조는 “타 국가의 책임으로 일본 영토에서 사망, 상해, 재산상 침해가 발생했을 때 일본은 타 국가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재판을 면제해주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일본 역시 자국민의 피해가 발생한 범죄에 대해선 다른 국가를 상대로 재판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가면제 원칙이 무조건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2004년 유엔 국가면제협약도 사망 등 인적 피해에 대해선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재판부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전 ‘여성과 아동의 인신매매금지 조약’ 및 ‘노예협약’,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던 사실도 적시했다. 일본 정부가 이 협약을 위반하는 것임을 알고도 ‘위안부’를 운영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국외 이송 목적의 약취 유인 매매죄를 처벌하는 일본 구형법을 언급하며 “당시 일본 공무원들은 자국의 형법을 위반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어서 배상과 보상을 회피할 수는 없다”며 “관습법을 무조건 적용할 수는 없다”고 판시한 우리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200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체 법질서에 반하며 정당하지 않고 불합리한 관습법은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고 김복동 할머니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선고는 13일 나올 예정이었지만 연기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민성철)는 “추가로 심리할 필요가 있다”며 선고를 미루고 3월에 변론을 재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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