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케미칼·애경 전 대표, 1심서 각 무죄
옥시 전 대표는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원료 다르고 위해성 입증 안됐다 판단
"폐질환, 천식 유발했다는 입증 안됐다"
인체에 유해한 원료로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유통·판매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사건과 달리 SK케미칼 전 대표와 애경산업 전 대표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같은 ‘가습기살균제’ 사건 임에도 정반대의 결과가 나온 데는 SK케미칼, 애경산업이 사용한 원료 성분이 옥시의 원료 성분과 다르고, 해당 원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아 실제 폐질환·천식을 유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판사 유영근)는 이날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13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선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흡입독성실험 등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신현우 전 옥시 대표 등이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 판단된 판례를 언급했다.
다만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의 이번 사건은 환경부 보고서 등에서 이미 유해성이 확인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디닌(PHMG)을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사용한 옥시 사건과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 SK케미칼이 제조하고 이마트와 애경산업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는 PHMG를 원료로 사용하지 않고,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원료로 사용했다.
PHMG는 양이온성을 지니는 분자량이 높은 고분자 물질이고, CMIT·MIT는 비이온성의 분자량이 낮은 단분자 형태의 물질로 물리화학적 특성 및 항균 메커니즘이 전혀 다른 물질이다.
재판부는 “PHMG는 피부독성은 낮지만 공교롭게도 흡입독성이 매우 높은데 독성시험을 하지 않았다”며 “이 사건은 CMIT·MIT 성분 살균제로 기존 유죄 사건과는 원료 성분이 다르다. 구조와 살균제로서 전혀 다른 물질”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성실험결과 PHMG는 명백하게 유해 결론이 나온 반면, CMIT·MIT는 이 사건 폐질환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검찰도 당시는 기소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환경부는 종전 여러 실험에서 폐섬유화가 확인되지 않자 2018년 8월 노출을 높이고 시간을 늘려 CMIT·MIT 흡입독성실험을 추가로 했다”며 “833배까지 설정해 반복한 실험에서 폐섬유화 악화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가습기살균제 폐질환 피해판정은 본질적으로 폭넓게 피해자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피해 인정의 엄격한 증명력을 요구하는 형사사건에서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 흡입독성실험과 동물실험 역학조사를 통해 CMIT·MIT 살균제 성분과 폐질환, 천식 유발 악화에 관한 일반적 인과관계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고, 환경부 종합보고서 내용도 인과관계 증명을 못 하는 추정이나 의견 제시인 점을 지적했다.
실제 두 제품을 사용한 동물실험에서 PHMG의 경우 많은 동물실험에서 폐섬유화가 관찰된 것으로 확인됐지만, CMIT·MIT는 폐섬유화를 포함한 폐질환이 관찰된 바 없다.
재판부는 “가습기살균제 위험성을 인정하려면 CMIT·MIT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한다”며 “하지만 현재까지 이뤄진 모든 결과를 보더라도 폐질환, 천식을 유발했다고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CMIT·MIT 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생, 천식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이 사건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 상해·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공소사실은 살필 필요가 없다고 봤다.
결국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증명이 없다”며 “어마어마한 피해가 발생한 사회적 참사고 바라보는 심정이 안타깝고 그지없지만, CMIT·MIT 살균제는 유죄 판결받은 PHMG 등과 성분에 많은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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