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019년 11월에 결정한 학생생활기록부(생기부)의 독서활동 삭제 후과가 두렵다. 전인교육에 필수인 독서가 빠짐에 따라 진학으로 과도하게 쏠린 한국교육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유력한 장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2024년 대학입시부터 생기부에 독서활동 기재를 금했는데 현 고1부터 적용된다. 현장 교사들은 독서활동이 생기부에서 빠지면 ‘독서는 대학 가는 데 불필요하다’라는 인식이 확산돼 독서 권장은 사실상 힘들다고 본다. 서울대에서만 정시모집에 한국사 점수를 반영하니 대다수 청소년들이 유관순이 누군지, 8·15가 어떤 날이고, 6·25가 뭔지 모르는 현실과 비슷하게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교육부 실무자는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생기부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교사가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그도 “아쉽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교육부 판단의 배경에는 ‘사교육이 독서에도 개입할 수 있으니 아예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있을 것이다.
교사들은 읽고, 쓰고, 말하기가 교육은 물론이고 삶을 살아가는 데 매우 필요한 것임에도 없어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학종의 가치 훼손도 염려한다. 대학들의 정시 반영률 40% 준수가 학종의 관심을 줄였다면, 독서의 등한시는 학종의 부실화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자아정립, 미래설계, 학과 선택 등에 도움을 주고, 대학에서도 학종 지원자의 충실도를 판명하는 주요 기준으로 삼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독서와 양질의 디지털 콘텐츠는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 차별화된 콘텐츠는 바로 상상력과 창의력에서 나오는데, 독서가 바탕이다. 조 바이든 차기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도 대선 지원 유세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읽고, 쓰기가 기본임을 밝히기도 했다. 대학은 오래전부터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커리큘럼에 넣었다. 2학년 때까지 인문학 고전 100권을 읽어야 하는 미국 시카고대학의 시카고 플랜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강소대학인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커리큘럼은 독서가 전부일 정도이다.
아이들은 고도의 분석 능력,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에서도 AI와 경쟁해야 한다. 의료용 로봇 왓슨, AI 애널리스트 켄쇼, AI 아나운서 등 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에는 이미 AI가 득세하고 있다. 선망하는 직장에 못 가더라도 상상력과 창의력이 있다면 삶은 풍요로울 것이다. 책은 아이들의 역량을 끄집어 내 마음껏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데 기여한다. 한국 교육의 트레이드 마크인 점수 따기로는 AI를 이길 수 없다. 독서활동의 미기재가 교육의 공정이라고 우기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를 망치는 길이다. 교육학 박사가 넘쳐나는 교육부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간과한 결정을 내린 것에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독서활동의 생기부 미기재 철회를 넘어 독서활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변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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