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6일 오후 8시59분쯤 제주시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A군(5)이 실려왔다.
혼수상태에 빠진 A군은 20일 뒤인 12월26일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5살의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병원에 실려온 A군의 뇌는 CT 촬영을 위한 조영제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뇌압이 상승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못하는 상태였다고 한다.
A군의 계모인 B씨(38·여)는 자초지종을 묻는 병원측에 “부엌에서 집안을 정리하고 있는 데 아이들 방에서 갑자기 소리가 나 가보니 A군이 경련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B씨는 “아이가 쓰러지기 일주일 전인 2018년 11월29일 복층계단에서 스스로 굴러 넘어져 다친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혼자 놀던 아이가 계단에 넘어져 숨진 안타까운 사고가 아니였다. A군은 또 한명의 정인이였다.
A군의 아버지와 사실혼 관계였던 B씨는 2017년부터 A군을 비롯해 누나(9)와 형(7) 등 의붓아이 3명을 키웠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평소 막내 A군이 말을 잘 듣지 않고 식탐이 많아 남의 간식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한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한다.
B씨가 지인과 휴대전화로 나눈 메시지에는 “커서 나를 더 힘들게 할 것 같다. 끔찍해 생각만해도”, “쟤만 보면 속이 뒤집어져”, “가지가지 미운 짓, A군만 없어도 행복하게 살겠다”, “강도나 살인자를 키우는 건 아닌가 너무 무서워” 등 A군을 향한 증오가 고스란히 담겼다.
경찰은 숨진 A군을 치료한 의사가 눈 부위와 등, 팔, 다리 등 전신에 멍자국을 발견해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신고를 하자 수사에 착수했다.
A군이 다니던 어린이집 교사들로부터 “평소 A군 몸에 멍자국이 발견돼 여러차례 사진을 찍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B씨의 오락가락 진술도 의심을 샀다. 병원 관계자에게는 “다른 장소에 있다가 쓰러진 피해자를 발견했다”고 했으나 사고 당시 119에는 “아이가 자기 분에 못이겨서 경련을 일으켜 쓰러졌다”고 신고했다. A군이 쓰러졌을 때 같은 장소에서 훈육하고 있었고 이를 감추려 한 것이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B씨가 다른 자녀에게 거짓 진술을 시킨 정황도 드러났다.
A군이 머리를 다친 11월29일 B씨는 A군의 누나와 형에게 “아빠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희들과 함께 있던 중 계단에서 넘어진 것으로 하자”고 거짓말을 시켰다.
다음날에도 “너희 다같이 있을 때 넘어졌다고 해. 계단에서 구르는 거 봤다고”라는 문자메시지를 자녀들에게 보낸 뒤 삭제했다.
경찰은 A군이 계단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B씨가 날카로운 물체로 머리를 쳤고 이 영향으로 뇌손상을 일으켜 일주일 뒤 숨진 것으로 판단했다.
법정에 선 B씨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A군이 혼자 놀다가 다쳤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학대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면서도 “부검결과 등 간접증거들을 종합하면 학대로 인한 사망이 인정된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어린나이 부모의 이혼으로 친모와 함께 살지 못하게 됐고 낯선 곳에서 피고인과 함께 살게 됐다”며 “사랑과 관심을 받고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아이임에도 피고인에게 고집이 세고 잘 운다며 심한 꾸중을 들어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A군이 나이나 체형에 비해 식탐이 많고 실제로 식사량이 많았지만 이는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반작용 내지 사랑에 대한 갈망을 달래기 위한 행동”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지인에게 ‘A군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섬뜩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피해자 몸에 있는 다수의 상처는 피고인에게 이전부터 상당한 수준의 학대를 받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의붓아이들을 비교적 성실히 키웠고 양육과정에서 분노를 참지 못해 범행에 이른 점, 자신도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며 징역 11년으로 감형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아동학대 치사 혐의와는 별도로 검찰이 제기한 아동학대 혐의 3건 모두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2심 재판부는 1건만 유죄를 선고했다.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이 B씨의 상고를 기각해 이 사건은 유죄가 확정됐다.
재판 과정에서 A군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학대한 계모를 비난하기는커녕 호의적인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A군이 다닌 어린이집 교사들은 “새엄마가 제일 좋다, 새엄마가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줬다고 자랑하기 바빴지 ‘무섭다’거나 ‘맞았다’는 등 새엄마에게 불리한 말은 일절 없었다”고 A군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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