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으로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인정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조성필)는 14일 술에 취한 직장 동료 A 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시장 비서실 전 직원 정모 씨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이같이 밝혔다. A 씨는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와 동일 인물이다. 법원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A 씨의 피해 사실을 법정에서 공개한 것이다.
●법원 “박 전 시장 성추행으로 정신적 고통”
이날 재판부는 술에 취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던 A 씨를 성폭행해 상해를 입힌 정 씨의 혐의(준강간치상)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정 씨는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전날인 지난해 4월 14일 A 씨를 회식 자리에 부른 뒤 만취한 A 씨를 모텔로 데리고 가 성폭행했다.
재판부는 정 씨 측 항변에 대한 판단을 밝히면서 A 씨가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진술한 내용을 일부 언급했다.
정 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A 씨가 겪게 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지 정 씨의 범행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A 씨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맞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정 씨의 성폭행이었다”고 지적하며 A 씨의 피해 내용을 거론했다.
재판부는 A 씨의 지난해 5월 정신건강의학과 상담 내용 등을 근거로 “A 씨가 박 전 시장 밑에서 근무한 지 1년째부터 박 전 시장이 성희롱 문자와 속옷 사진 등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이어 “‘(너의) 냄새를 맡고 싶다’ ‘몸매가 좋다. 사진을 보내 달라’ 등의 문자, (A 씨가) 2020년 2월 다른 부서로 옮겼을 때도 ‘너는 남자에 대해 모른다. 남자를 알아야 시집을 간다. 섹스를 알려주겠다’ 등의 문자를 보냈다는 진술이 있다”고 밝혔다.
A 씨 측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박 전 시장의 문자메시지를 지난해 수사기관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재판이 끝난 뒤 법률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에게 “판사님이 박 전 시장의 성추행 건에 대해 언급해줘 다행”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A 씨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대해 법적인 판단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이 사망함에 따라 지난해 12월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의견을 달아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A 씨 측은 사법적 절차를 통해 피해 사실이 규명되지 않아 일각에서 A 씨의 실명을 공개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2차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A 씨는 박 전 시장의 범행이 부정되고, 왜곡된 사실관계가 퍼지는 것에 대해 힘들어하고 있다”며 “성추행 가해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가 알려지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피해자 측 “2차 피해 차단에 동참해달라”
이날 A 씨의 모친이 판결 전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의 내용도 일부 공개됐다. A 씨의 모친은 “혹시라도 우리 딸이 나쁜 마음을 먹을까봐 집을 버리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 딸은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불 꺼진 방에서 휴대전화를 뒤적거리며 뉴스의 악성 댓글을 본다. 어쩌다 잠이 든 딸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나는 딸이 숨을 쉬는지 확인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A 씨의 변호인단도 이날 “2차 피해를 차단하는 데 동참해주길 바란다. 그것이 피해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이정표”라며 “피해자의 얼굴이 담긴 동영상, 실명, 사진이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상태다. 서울시는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외부에 제공한 자를 징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피해자에 대해 온라인에 악성 댓글 등을 작성한 이들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 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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