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서울 양천구 목동실버문화복지센터의 한 교육실. 음식 등을 주문하는 키오스크 화면 앞에 어르신들이 모였다. 점원에게 직접 주문하는 것에 익숙한 어르신들은 모니터의 메뉴를 직접 누르고 결제하는 일이 낯설기만 했다.
“햄버거 가게에 있는 거랑 비슷하네.” “손자랑 가면 다루기가 힘들어서 부끄럽더라고.”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주는 강사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어르신들 사이에는 한영애 씨(71)도 있었다. 한 씨는 다른 이들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며 수첩을 빼곡하게 채워 나갔다.
이날은 양천구 ‘시니어 명예기자단’으로 활동하는 한 씨가 처음 현장 취재를 나온 날이었다. 그와 다른 명예기자들이 취재한 내용은 지난해 12월 23일 발행된 잡지 ‘시니어 플러스’에 실렸다. 그는 “제가 보고 들으며 정리한 내용이 잡지에 실린 것을 보니 진짜 기자가 된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시니어 플러스는 양천구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계간지다. 중장년층과 노년층을 대상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각종 생활밀착형 정보를 담았다. 창간호에는 어르신들이 사용하기 어려워하는 무인 주문·결제 시스템 키오스크 사용법과 스마트폰 사용법, 연금 포트폴리오 등이 실렸다.
어르신 대상 소식지를 발행하는 자치구는 양천구뿐만이 아니다. 동대문구는 2011년 서울 자치구 가운데 처음으로 ‘신바람 실버 동대문’을 발간했고 현재 40호까지 나왔다. 노원구 영등포구 등도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소식지를 정기적으로 내고 있다. 양천구 관계자는 “컬러 30쪽 안팎의 계간지를 정기적으로 발행할 계획”이라며 “전문 잡지 형식을 갖춰 발행하는 곳은 양천구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지면은 구청 관계자들 외에도 12명의 시니어 명예기자들이 함께 채워 나간다. 이를 위해 양천구는 지난해 7월 기자단을 선발했다. 만 65세 이상 구민 12명을 뽑는데 20여 명이 몰리면서 경쟁률은 2 대 1에 달했다.
명예기자단으로 뽑힌 이들은 이번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았다고 입을 모았다. 박정달 씨(75)는 “회사에서 사보에 정기적으로 글을 쓸 정도로 어릴 적 꿈이었던 기자가 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며 “기자가 될 수 있는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성부 씨(69)는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을 맞은 뒤 허탈함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48년간 살아온 우리 동네를 위해 다시 일하게 되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며 반겼다. 한영애 씨의 경우 자녀들이 독립한 뒤 우울감이 찾아왔지만 기자 활동 등을 통해 극복했다고 한다.
양천구 관계자는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장기화로 답답함을 느끼는 어르신들이 특히 많은 편”이라며 “명예기자 활동이 이분들에게 소속감과 성취감을 드리고 답답함도 해소할 수 있게 돕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양천구는 독자인 중장년층과 노년층에게 양질의 생활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명예기자단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직은 취재 내용과 소감 정도를 정리해 전달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사작성법 교육 등을 통해 명예기자들이 직접 자신의 기사를 실을 수 있게 도울 방침이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어르신에게 필요한 정보는 물론이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잡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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