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영상 확보한 택시기사… 경찰에 보여줬지만 “못본걸로”
李차관 특가법 적용 않고 불입건
경찰, 뒤늦게 진상조사단 꾸리고 거짓말한 수사관 대기발령 조치
李 “영상은 실체 판단할 근거… 수사기관에 제출된 것은 다행”
“블랙박스 영상이 녹화가 안 됐다. 블랙박스 업체에서도 녹화된 게 없다고 들었다.”
지난해 12월 28일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택시기사 A 씨를 폭행한 이용구 법무부 차관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운전 중 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폭행 당시 영상이 없어 진상 파악이 안 되고, A 씨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경찰은 피해자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형법을 적용해 이 차관을 입건하지 않고 내사 종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A 씨가 경찰에게 영상을 보여줬고 블랙박스 업체도 경찰에게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으로 24일 밝혀졌다. 경찰은 이 차관 사건을 담당한 서울 서초경찰서 B 경사가 거짓말을 했다며 대기발령 조치하고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내사종결 과정을 재조사하고 있다.
○ 경찰, 폭행 영상 직접 보고도 다음 날 내사종결
내사종결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 11일 B 경사는 경찰서를 방문한 A 씨가 블랙박스 업체에서 휴대전화로 촬영한 30초 분량의 영상을 직접 봤다. A 씨는 폭행 사건 발생 당일인 11월 6일 파출소 조사에서 영상이 재생되지 않자 다음 날 서울 성동구의 한 블랙박스 업체를 방문해 SD카드를 건네 영상을 확인했다. 이 차관이 A 씨의 목덜미를 잡고 폭행하며 욕설을 하는 내용의 영상이 나왔고 A 씨는 이를 자신의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B 경사는 해당 영상을 보고 “블랙박스 영상은 못 본 걸로 하겠다”고 말했고 그 다음 날 이 차관을 내사종결했다.
하지만 경찰이 특가법상 ‘운전 중 폭행’ 혐의를 적용했다면 이 차관에 대한 처분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특가법은 피해자의 처벌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를 해야 한다. 특히 영상 내용이나 영상이 찍힌 시간 등을 역추적하면 택시가 일반도로를 주행 중이었는지 등 결정적인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A 씨가 B 경사에게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줬다고 주장한 23일 경찰은 B 경사를 감찰했고,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당시 서초경찰서의 지휘 라인 등까지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79일 만이다.
○ “영상 있다” 말 들은 다음 날 서장이 내사종결 승인
B 경사는 지난해 11월 9일 블랙박스 업체와 통화하면서 영상의 존재를 처음 인지했다. 이날 처벌불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경찰서를 방문한 A 씨에게서 SD카드를 받았지만 영상을 재생할 수 없었다. B 경사는 영상 재생 방법을 문의하기 위해 블랙박스 업체에 전화를 걸었고, 업체 관계자가 “A 씨가 영상을 가져갔다”고 말했다. B 경사는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당시 서초경찰서장은 내사종결을 승인했다. 서초서 형사과장은 지난해 11월 10일 “변호사가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건이 있는데 현장 상황과 피해자 진술, 관련 판례 등을 토대로 내사종결하겠다”고 구두 보고했고 서장은 “의견대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 이 차관 “블랙박스 영상 지워 달라” 제안
이 차관은 사건 발생 당일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합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1월 7일 이 차관은 A 씨에게 사과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끝난 뒤 A 씨는 반성하라는 의미로 자신이 찍은 영상을 이 차관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 차관은 해당 영상을 본 후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튿날 A 씨 자택 근처에서 A 씨를 만나 합의한 이 차관은 “영상을 지우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A 씨는 “지우지 않겠다. 그 대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검찰은 A 씨가 삭제한 영상을 최근 복원했으며, 블랙박스 업체 관계자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이 차관은 “블랙박스 영상은 이 사건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며, 어떤 경위에서건 수사기관에 제출된 것은 다행”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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