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공수처법 25조 2항에는 ‘수사처 외의 다른 수사기관이 검사의 고위공직자범죄 혐의를 발견한 경우 그 수사기관의 장은 사건을 수사처에 이첩하여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검찰이 수사 중인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 사건에는 가짜 내사번호를 적어 김 전 차관을 불법적으로 긴급 출국 금지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규원 검사를 비롯해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검사들이 수사 대상에 올라 있어 법에 따르면 공수처로 이첩해야 하는 상황이 맞다.
그런데 박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답한 대로 현재 상태에서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할 경우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먼저 검찰은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이정섭)를 중심으로 검사 5명으로 구성된 별도 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반해 공수처는 공식 출범이 이뤄졌다고 해도 처장만 있을 뿐 차장 이하 검사와 수사관이 1명도 없어 당장은 수사를 전혀 할 수가 없다.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사건을 이첩한다면 공수처 조직이 꾸려질 때까지 수개월 간 사건을 그냥 묵히게 된다”며 “적시에 빠르게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는 수사의 기본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수사를 하다가 중단하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할 시간을 벌게 되는 범죄 혐의자들이 가장 좋아할 것”이라며 “수사할 사람도 없는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하겠다는 것은 수사 포기 선언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21일 취임한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은 이르면 이번 주 공수처 2인자인 차장을 임명 제청하고 2월부터 검사 23명과 수사관 30여명을 채용하는 절차에 나설 계획잍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공수처로 사건을 이첩하는 것은 ‘조속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국민의 바람과도 어긋난다는 의견이 많다.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 검찰 수사팀은 21일과 22일 이틀간 법무부와 대검, 인천공항 출입국·외국인청, 이 검사의 자택과 공정위 파견 사무실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을 벌인 후 관련자 소환 조사를 병행하며 사건의 실체에 빠르게 접근해가고 있다. 그런데 수사가 탄력이 붙고 있는 이런 때에 다른 기관으로 사건을 이첩하게 될 경우 효과적인 수사 방안을 고민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기관이 오히려 수사를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 수사 조직도 꾸려지지 않았고 수사 경험도 없는 공수처가 나서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신 수사 경험과 의지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현 검찰 수사팀이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도록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이 서로 협조해 정치적 외압을 차단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검사 비리를 수사하는 것은 현행 공수처법으로도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공수처법 24조 3항에는 ‘처장은 피의자, 피해자, 사건의 내용과 규모 등에 비추어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될 때에는 해당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법적으로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에 있어 공수처가 우선권을 갖는 것은 맞지만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 발견에 효과적이라고 공수처장이 판단할 경우에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