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집공, 선생님이 지켜봐요”… ‘화상회의 교실’ 문 연 고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30일 03시 00분


[위클리 리포트]점점 진화하는 ‘코로나시대 공부법’

“전원 음 소거! 지금부터 점심 전까지 집중해서 공부하자.”

겨울방학이 시작된 1월 초. 대구 능인고 학생 150여 명이 화상회의 시스템 ‘줌(ZOOM)’에 모였다. 매일 오전 9시에 접속해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꼼짝없이 4시간 동안 각자 공부하는 모습을 실시간 공유해야 한다. 이른바 ‘라이브’ 자기주도 학습이다. 온라인 감독교사는 늦게 접속하거나 자리를 오래 비우면 곧장 학생에게 연락한다.

방학 중 학교에 가서 특강을 듣고 자습하는 게 당연했던 기성세대에겐 이들의 모습이 낯설 것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대입 수험생이 된 학생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됐다. 김원술 대구 능인고 교장은 “지난해 원격수업으로 느슨해졌던 학업 태도를 바로잡기 위해 학교의 생활관리가 필요하다는 학생들의 요구가 많았다”며 “1, 2학년 중 23%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코로나19의 등장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바꿨다. 공부 방식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 신인류들이 만들어 낸 ‘코로나 공부법’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 대세는 혼공, 질문 과외도 등장


‘언택트’ ‘집공부’ ‘혼공(혼자 하는 공부)’….

요즘 서점에서 팔리는 공부법 관련 책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다. 학생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자기주도 학습은 예전부터 꾸준히 강조됐지만, 코로나19로 학교 생활까지 원격으로 전환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혼자 공부하는 습관의 중요성이 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게 ‘온라인 학습 멘토’다. 특정 과목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수험생활의 일정을 짜고 매일 도달한 학습량을 점검하는 게 학습 멘토의 주된 역할이다.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공부 좀 하라’고 매일 자식과 싸우는 데 이골이 났죠. 주변에서 추천하기에 이번 방학에는 온라인 학습 멘토를 붙이기로 했어요.”(고교생 학부모 A 씨·46)

“방학이라서 학생 3명을 동시에 멘토링하고 있어요. 계획 수립, 동기부여, 학습 진도 점검 등 다방면으로 관리를 해주면서 월 10만∼20만 원을 받아요. 수험생이 지망하는 ‘○○대 △△과’ 재학생을 콕 집어 계약하면 가격은 더 올라가기도 합니다.”(대학생 김모 씨·22)

일부 학생들은 ‘온라인 질문 한 건당 500원’ 식의 질문 전용 과외를 찾기도 한다. 학원에 가는 대신 자신이 취약한 교과목을 온라인 화상과외 방식으로 보충하고 싶다는 수험생들도 부쩍 늘었다. 전문적인 화상회의 시스템을 갖춰 이 학생들과 과외교사를 연결하는 중개업체도 생겼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코로나19가 장기화됨에 따라 가정 내에서 스스로 학업을 관리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며 “이런 수요에 따라 개인교습 형태도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 만나지 않는 온라인 스터디


“오전 10시에 모이는 거, 알지?”

올해 고3이 되는 황모 군(18)은 주말엔 아침부터 컴퓨터를 켜고 친구 넷과 화상채팅으로 만난다. 하지만 카메라만 켜둘 뿐 대화는 나누지 않는다. 이들은 단지 온라인으로 스터디를 한다. 평일엔 각자 학원에 가고, 주말엔 이렇게 모여 복습을 한다. 황 군은 “독서실이나 학원이 아니면 공부가 잘 안된다”며 “친구들과 온라인 스터디를 해 보니 효과가 좋다”고 전했다.

성인들의 어학, 취업 스터디도 마찬가지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온라인 스터디를 하는 게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외국계 회사 입사가 목표인 이모 씨(29)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영어 면접을 준비 중인 이들을 모았고, 영어 강사 한 명을 초청해 수강료를 나눠 냈다”며 “시간과 비용을 모두 아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새벽 기상’이나 ‘하루 공부시간’을 인증하는 모임도 온라인 스터디로 분류돼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끈끈하진 않지만 적당한 연결고리를 매개로 모인 관계를 ‘느슨한 연대’라고 일컫는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0’을 출간하며 “요즘 사람들은 강한 연대가 아닌 느슨한 연대를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인간관계의 장점은 취하면서 과도한 연결이 주는 부담을 피하는 태도가 코로나19 시대의 학습법에 투영된 셈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 규칙을 지키느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온라인 스터디를 시작한 이들은 대면 스터디보다 더 효율적이었다는 반응을 보인다. 로스쿨 준비생 이모 씨(25)는 “오프라인 스터디를 하다 보면 불필요한 친목활동으로 공부에 방해를 받기도 한다”며 “온라인 스터디는 그런 부담이 작다는 게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 학원 서비스도 ‘언택트’로 진화


“돈이 아깝지 않네요.”

경기 구리시에 사는 학부모 A 씨는 두 자녀가 다니는 수학학원의 원격수업을 이렇게 평가한다. 수강료는 오프라인과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원격으로 전환되면서 수업당 시간이 150분에서 180분으로 늘었다. 수업 진도에 맞춰 문제풀이 숙제 꾸러미를 집까지 전달해주고, 다 푼 것을 수거해 간다. 담당교사가 풀이 과정을 살펴보면서 미진한 부분을 찾아낸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도 학원도 원격수업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공교육의 비대면 수업에 대해선 “왜 계속 제자리걸음이냐”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사교육 시장은 발 빠르게 움직이며 수요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좋은 서비스는 ‘원격수업 AS’다. 개별 학생에 대해 피드백을 해 주지 않는 학교 수업과 달리 학원은 정규 온라인 수업을 마친 뒤 이른바 ‘숙제셔틀’로 학습지를 배송, 회수해 학생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잡아낸다.

각 교과 내용을 가르치는 교사 이외에 이른바 ‘학습 매니저’를 별도로 두고 수강생들의 학습태도를 관리하는 학원도 있다. 서울 광진구의 한 종합학원은 생활리듬이 깨지기 쉬운 원격수업 기간 동안 학습계획을 세우고, 비대면 대화로 동기부여를 하는 ‘일대일 관리서비스’를 해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아예 온라인 자율학습까지 도입한 학원도 등장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학원은 이달부터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식사시간이나 다른 학원에 가야 하는 시간을 제외하곤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하는 ‘9 to 9 프로젝트’를 해오고 있다. 학생들은 저마다 카메라에 필기하는 손 모습이나 앉아있는 옆모습을 비춘 채로 묵묵히 자습을 이어간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코로나19 상황 속에 자기주도 학습이 중요해졌다”며 “입시 업체들도 이에 발맞춰 자율성을 강조하면서도 맞춤형 교육과 관리 시스템을 제공하고자 다양한 변화들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홈공(집에서 공부)’ 인테리어 성황

두 살 터울 자녀를 키우는 임모 씨(43)는 최근 집 인테리어를 바꿨다. 두 아이가 침실 겸 공부방으로 방 하나를 같이 쓰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 비대면 수업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드레스룸을 없애고 각자 공부방을 만들어주느라 부분 인테리어를 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은 학습 방식뿐 아니라 가정의 ‘공부방’ 개념도 크게 바꿨다. 예전엔 학교, 학원, 독서실 등 집 울타리 밖에서 학습이 이뤄졌지만, 이제는 가정 내에서 수업 듣고 공부도 해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을 기점으로 ‘방꾸(방 꾸미기)’ ‘데꾸(데스크 꾸미기)’ 등 공부방 인테리어와 관련된 신조어들도 생겼다. 쌍방향 실시간 수업 도중에 카메라로 비치는 공간만 중점적으로 바꾸는 ‘캠테리어’(카메라와 인테리어의 합성어)도 유행이다.

초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 이모 씨(39)는 아예 공부방 가구를 교체했다. 태블릿PC와 교과서를 한 번에 올려두고 공부하기에는 책상이 작아 넓은 책상으로 바꾸고, PC 거치대를 별도로 설치했다. 책상 뒤편에는 초록색 자석칠판도 세워뒀다. 이 씨는 “최대한 학교 분위기와 비슷하도록 방을 꾸몄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대면 수업 시대에 최적화된 공부방을 만들고 싶어도 공간의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다. 이럴 땐 팬트리나 알파룸, 거실 구석 등을 활용해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이진국 연세대 실내건축학과 교수는 “이른바 ‘뉴노멀’(새로운 일상)에 적응하려면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공간의 가변성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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