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말고, 세상 밝히는 삶 살아주길…” 장기기증자 가족이 쓴 ‘수취인 불명’ 편지[히어로콘텐츠/환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8일 03시 00분


[환생 6화]
환생-여섯 번째 이야기, 뜨겁게 쏟아진 응원과 공감
기증-이식인 교류 법적으로 막혀
익명 서신통해 안부-위로 주고받아
“건강하단 소식에 기증 자랑스러워”

2011년 1월 17일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장기 기증으로 4명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고 이종훈 씨의 어머니 장부순 씨가 쓴 편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2011년 1월 17일 뇌사 판정을 받은 뒤 장기 기증으로 4명에게 생명을 선물하고 떠난 고 이종훈 씨의 어머니 장부순 씨가 쓴 편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마음의 빚을 졌단 생각은 마세요. 그저 건강하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살아가주길 바랍니다.”

2012년 7명에게 장기 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난 임광택 씨의 부인 고경숙 씨(59)는 지난달 8일 편지 한 통을 썼다. 지난해 12월 감동의 편지들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장기를 기증 받은 이식수혜자들이 진심을 담아 쓴 것이었다. 고 씨는 “남편에게 장기를 기증받은 사람도 있을까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읽어봤다”며 “이식수혜자들이 기증자들의 삶과 꿈까지 알차게 살아가길 바라며 답장을 썼다”고 했다.

최근 장기 기증자의 유족들이 이식수혜자와 그 가족들에게 쓴 편지들이 세상에 공개됐다. 이들은 모두 “건강하고 올바르게 살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했다. 지난달부터 유족들이 쓴 편지는 모두 6통에 이른다.

이 편지들은 기증자 유족들도, 이식수혜자 가족들도 ‘수취인 불명’이다. 국내에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들 사이의 접촉이나 교류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장기매매와 같은 잘못된 일이 벌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유족으로선 내 가족의 일부가 잘 살아가는지 궁금한 건 당연한 일. 이에 신분은 밝히지 않은 채 이식수혜자 측 편지들이 유족에게 전달되자, 유족들도 답장을 쓴 것이다.

유족들은 이식수혜자나 가족들이 마음에 짐을 지고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고 이종훈 씨의 어머니 장부순 씨(78)는 “여러분은 ‘미안하다’고 하지만 기증자 가족은 내 가족인 듯 반갑고 고맙다. 오히려 여러분에게 우리가 위로를 받는다”고 적었다. 이 씨는 2011년 1월 17일 뇌사 판정을 받고 4명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

유족들은 이식수혜자들의 안부라도 전해 듣고픈 소망도 내비쳤다. 고 씨도 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남편이 떠날 때 고교생이던 딸은 올 2월 한 대학병원 안과의사가 됐다”며 “딸의 꿈은 언젠가 아빠의 각막을 이식받은 분을 마주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식수혜자들이 건강하단 편지를 보며 저절로 어깨가 으쓱해지는 건 왜일까요. ‘아… 정말 잘했구나. 우리 아내 자랑스럽구나’ 마음속으로 칭찬했습니다.”(유가족 정모 씨)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환생’은 동아일보가 지난해 창간 100주년을 맞아 출범시킨 히어로콘텐츠팀 2기의 결과물이다. 동아일보가 한 세기 동안 축적한 역량을 집약해 만드는 히어로콘텐츠는 다양한 구성원들의 협업을 통해 이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장시간에 걸친 깊이 있는 취재, 참신한 그래픽, 동영상, 디지털 기술구현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높이는 복합 콘텐츠를 지향한다. 지면보도와 동시에 히어로콘텐츠 전용(original.donga.com) 사이트를 통해 기존에 경험할 수 없던 디지털 플랫폼 특화 보도 형식을 선보인다.

::히어로콘텐츠팀 2기::
▽총괄 팀장: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기사 취재: 곽도영 김동혁 김은지 이윤태 기자
▽사진·동영상 취재: 송은석 장승윤 양회성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편집: 홍정수 기자
▽프로젝트 기획: 이샘물 김성규 기자
▽사이트 제작: 디자인 이현정, 퍼블리싱 조동진 김수영, 개발 윤태영
▽동영상 편집: 김신애 안채원 CD

환생 디지털페이지(https://original.donga.com/2021/rebirth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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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세상은 정말 살 만한 세상인가’ 하는.
뉴스에서 연일 건조하게 흘러나오는 착잡한 사연들. 언젠가부터 사랑, 나눔, 희망 따위 단어는 우리에게 공익광고 속 말들이 돼버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손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 절박한 순간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주고 간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기 기증인들의 이야기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작별 앞에서 생명을 선물한 사람들, 그리고 그를 통해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100일간 따라갔다.

‘환생’은 우리 사회를 다시 살아나게 한 숨은 히어로들에게 바치는 기사다.

#수취인 불명#편지#환생#삶을 나눈 사람들#기증#이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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